트루웨스트, 진정한 서부. 

그림에 그린 듯한 형제의 설정을 보면서부터 크게 기대감은 갖지 않고 본 연극이었다. 

알래스카로 휴가를 떠난 어머니와 집에 함께 남게 된 두 명의 형제. 승승장구해온 고지식한 성격의 시나리오 작가인 동생 오스틴, 사막을 헤매이고 다니던 방탕한 방랑자 형 리. 여기에 얼마만큼의 등장인물을 더하느냐 빼느냐가 좀 더 스토리에 굴곡을 줄 수는 있겠지만, 너무 뻔한 형제간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런 예상을 크게 뒤집지 못하고 형제간의 갈등양상도 아주 진부적인 요소들로 점철된다. 

동생은 형의 자유로운 모습을 닮고싶어하고, 형은 동생의 엘리트 가도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둘은 그 사실을 서로 모른다. 이런 진부한 설정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하나의 새로운 요소는 형이 동생의 일에 끼어들어, 동생의 작품을 뒤엎고 자신의 시나리오를 성공적으로 쓰게 한다는 것이다. 사울이라는 제3의 등장인물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동생은 자신이 그동안 매진해왔던 프로젝트를 형에게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나갔더라면 그나마 갈등양상이 확연하게 드러났을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는 점점 이상하게 치닫는다.

크게 아쉬웠던 설정은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번째는, 동생의 영역을 침범한 형 리의 시나리오에 관한 것이다. 사울에게 '정말 훌륭한 다시는 없을 시나리오. 그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평가 받을 만한 것이었고, 계속해서 형 리가 한 탕을 해보려고 하는 소재가 되는 것이 이 시나리오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이 나옴에도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나서도 그 결과는 불투명하다. 조금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었을까.

두번째는, 아버지에 대한 것이다. 극의 처음부터 동생 오스틴은 아버지에 대한 화제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못견뎌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형 리는 아버지를 모셔오겠다며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드러난 실상은 그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방랑자인 형은 잘 모르는 아버지의 비참한 모습을 동생에게서 듣게 되고, 형제는 함께 눈물을 흘린다. 지나치게 신파극적인 요소로 몰고가려는 것이 갑작스러워서 어울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계속 언급되는 것에 비해 형제와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묘사된다. 아예 빼버리거나, 아니면 아예 좀 더 자세하게 다루었어야 할 것 같다.

세번째는, 어머니에 관한 것이다. 극 중에서 어머니는 남자 배우가 연기하게 된다. 연출가와의 대화 시간에 연출가께서 '좀 더 불편한 느낌을 주려했다'고 말씀하신 부분은 아주 잘 실현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전체 장면 중에 일부의 장면을 잘라낸 탓인지, 폭력을 당한 트라우마를 가진 여성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는 단서 자체가 너무 적다. 아예 그런 요소를 빼버리고 형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트라우마를 가진 여성이라는 설정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했어야 옳다. 

나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글을 만들어가는 과정보다 글을 쓰는 행위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한 번도 한문장을 백문장으로 늘리는 일을 귀찮거나 피곤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그 한 문장을 만드는 법을 잘 모르고, 또 귀찮아 할 뿐이다. 아마 이 표현이 적확할거다.


그래서인지 한 문장을 백 문장으로 늘려달라고, 제 일을 떠넘기고 싶어하는 사람을 보면 좀 착찹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래? 하고 정색할 정도는 아닌데...


백만원을 훔치는 데 양심을 팔지 백원을 훔치는데 양심을 팔지는 마라,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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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고수가 수련을 시키는 것처럼,

번역을 시키는 것도 다 글을 잘 쓰게 하기 위한 일환의 수련이 아닐까 하는 망상이 들었다.



필사를 왜 하는지 알 것 같다.

필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였는데, 


본의 아니게 문장 하나하나를 쥐어뜯으며 읽은 책이 - 번역한 책이 - 몇 권째가 되어가는데, 

걔중에서는 단편도 있고, 또 장편도 있고, 아이들을 위한 책도 있었다.


장편은, 정말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씌어진다기 보다, 그냥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목적에서 씌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주 소소한 곁가지가 잔뜩잔뜩. 분명히 섬에 난파한 이야긴데 섬에 도착하기 전까지가 책의 1/4일만큼 곁가지가 잔뜩잔뜩. 읽을 땐 모르겠지만 이걸 옮기고 있자니 지치는 이야기다.


하지만 역시 이런 걸 잘썼다고 하는 거겠지. 곁가지 잔뜩잔뜩. 

좀 부정적인 말로 달리 말하면, 포인트를 잃어버린 느낌이기도 한데 말야.


아 진도가 안나간다. 빨리 끝내버리고 내 글을 쓰고 싶은데. 

자료만 잔뜩 빌려놓고, 생각보다 번역이 늦어지니까 연체료만 생길 판.


읽기는 로맨스를 잔뜩 읽어놓고, 쓸 때는 로맨스를 안쓰겠다고 버튕기는 내가 웃기다' 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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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다의 환상, 정도쯤 되면 책을 사야 하는데.

처음엔 책을 빌려 읽었고, 그 다음엔 책을 샀다가 꼭 이 책을 읽히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해 버렸다. 

그리고 나서는 온다리쿠의 다른 책을 먼저 사겠다고 코스모스를 샀고, 또 그 책을 꼭 읽히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해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결국 사지 않게 되었다.



아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가장 많이 닮은 글이 <흑과 다의 환상>일 것이다. 


거기에 있는 문장 문장이 하나하나 가슴에 박혀서, 비슷한 맥락의 문장을 떠올릴때면 곧장 거기에 나왔던 문장으로 치환되버리곤 한다. 

특히, 사다리를 놓고 올라오는 절망이라는 녀석이라는 말.

특히, 붉은 여왕 가설 이야기.

어떻게 이렇게 담백한데도 자꾸 나를 공감하게 할까.



다시 읽어야겠다. 조만간.

갑자기 그리워졌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먹는 걸로 해소하는 건,

다른 일들은 해도 티도 안나는 데 비해, 음식은 그 자리에서 내가 먹는 만큼 사라지는 게 보이니까, 그것 때문이라고들 하던데. 뭐, 별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어쨋든 비슷한 의미로, 나는 출력할 때, 인쇄물이 뽑아져 나오는 걸 보면 행복한 것 같다.

왜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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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발췌해놓은 발췌문구들을 찾기가 너무 귀찮아서, 예전 블로그에서 끌어왔다. 너무 기니까 접어야지.


섀도우 - 미치오 슈스케.




요노스케 이야기 - 요시다 슈이치.



집오리와 들오리와 코인로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연애중독


쓸쓸함의 주파수 - 오츠 이치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 온다 리쿠



중력의 법칙 - 장 튈레


목요조곡 - 온다 리쿠



티티새 - 요시모토 바나나



서부전선 이상없다 - 레마르크



흑과 다의 환상 - 온다 리쿠



영원한 것은 없다 - 로랑스 타르디외



남자들에게 - 시오노 나나미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공중그네



알랭드 보통 통합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불안)



그리스인 조르바




그 당시에는 발췌할 만한 문구라고 생각했거나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을 지라도,

지금 볼 때 쓰레기다 싶은 건 그냥 귀찮아서 생략했다. 


그러고 나서 제목들을 훑어보니 거의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들이다. 대놓고 편애 ㅋㅋ


물론, 이 블로그에 이미 있는 발췌문구들은 귀찮으니까 정리안함ㅋ


진짜 요즘 책 안읽는구나. 옛날이라고 그렇게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발췌해놓는 성의는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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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가 기억하자고 남기는 리뷰인데,  

옛날, 모 단체에서 홍보를 목적으로 리뷰를 멋대로 퍼가고 댓글 하나 남겼던 기억이 있어서 리뷰는 잘 안쓰게 되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그래도 상관없는 거야? 출처만 명시하면 사전동의를 얻지 않아도 괜찮나?

우리나라는 저작권 알기를 똥같이 아는 나라니까, 거기다 좋은 일을 하고 있으면 무슨 일을 해도 괜찮을거라는 인식이 박힌 나라니까. 

뭐, 이렇게 속이 불편할거면 그냥 리뷰를 안쓰면 되겠지만. 계속 떠올라서 어쩔 수 없이 몇 자 쓰기로 한다.



------

한예종 출신 극단 양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결국 재상연의 마지막날에서야 보게 되었다.

양손프로젝트를 처음 접하게 된 <개는 맹수다>이후로 달리 큰 일이 없으면 쫓아가서 다 찾아 본 편인 것 같다. 내가 뭐라고 감히 평가하기는 뭐하지만 <개는 맹수다>와 <ENDGAME>은 꽤 비슷한 느낌이어서 편하고 재밌게 봤던 것 같고, <죽음과 소녀>는 상당한 실험작이어서 배우들이 인사하고 사라지는 순간까지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연극을 보면서 현진건의 소설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늘 연극을 볼 때마다 꼬질꼬질하신 남자분이 고개를 푹 숙이고 제3자의 대사를 던질 때마다 어쩜 저렇게 만화같은 연출일까 생각한다. 솔직히 이 분은 좀 사기성이 짙은 캐릭터인 것 같다. 연기력이 만렙임ㅋㅋㅋㅋ 


이들의 연극은 늘 어딘가 낡지 않은 새로운 시도가 보여서 보고 돌아서서 나올 때에도 기억에 남는 묘한 장면들이 있다.

극작을 전공하는 친구가 소도구를 많이 쓰지 않고 연극을 시작하게 된 게 어떤 외국분 이후로 시작된 전통이라는데, 비전공자인 나는 잘 모르겠다.

<운수 좋은 날>은 뻔히 다 아는 내용을 연기력 하나로 살린 훌륭한 만렙배우의 승리ㅋㅋ 

<연애청산>은 다른 배우였으면 이런 연출을 할 수 있었을까 싶은 연출이었다. 

늘 이 배우분은 팔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움직임이 크고 두드러진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게 훨씬 더 부각되었던 듯. 자칫 산만할 수도 있었을 연출이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그립은 흘긴 눈>은 그냥 보면서 언니 사랑해요 우와 멋있다 이생각밖에 안듬 ㅋㅋㅋㅋ 매번 연기하실 때마다 눈물연기를 정말 잘하시는데, 어쩜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싶다. 

워터프루프 마스카라 사드리고 싶었음 ㅋㅋㅋㅋ

<정조와 약값>은 압도적인 연출의 승리.

걸어가는 장면에서 나란히 서서 몸을 흔드는 것.

의자 하나를 사이에 놓고 방을 나누는 것. 그 덕분에 주부가 부지런히 의자 이쪽과 저쪽편을 오가는 것.


때로 해설자가 된 것 처럼 나란히 서서 해설하는 방식은 소설로 된 것을 극으로 옮겼을 때 이분들이 주로 쓰는 방식인 것 같다. 꼭 의도해서는 아니겠지만,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나누어 말을 하고 자연스럽게 극 중 배우로 돌아가는 그 방식이 너무 좋다.

많은 고민 끝에 무대를 만들어내는 이 배우님들이 앞으로도 계속 화이팅하셨으면 좋겠다.




옥수수다 옥수수! 옥수수인간이다! 옥수수콜라다! 옥수수맥주다! 옥수수너겟이다!
끄앙 300번 너무 좋아요. 왜 내가 그동안 800에 미쳐 300을 외면했는지 모르겠다!
300번을 진즉에 돌아봤더라면 내가 옥수수인간이라는 걸 더 일찍 알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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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엔.

사치하지 말자.
타인에게 지나치게 기대하지 말자. 그리고 그것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화내거나 탓하지 말자.
오늘 산 스케치북 한 권을 가득 채우자. 두 권도 좋고, 세 권도 좋고.
나를 속이지 말자. 덧없다.


-=-=

사실 일기라는 건 오늘 좋으라고 쓴다기보다, 되돌아 봤을 때 더 좋은 것 같다.

그래 까놓고 말해서 힘들어. 내가 노력하지 않았다는게 힘들고,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다는 것도 힘들고, 거짓말을 하는 것도 힘들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도 힘들어.

그래서 한 해에도 절취선이 있잖아. 새해잖아. 새해라잖아. 1초 차이로 한살 더 먹는다잖아. 힘내야지 어쩔건데.


절대 앞으론 쓰지 않을 줄 알았던 지우개를 다시 끄집어내고, 연필과 샤프도 꺼내고, 4B연필을 깎았다.
응. 나는, 이제 선을 잘못 긋는 것을 두려워하고, 좀 더 완벽해지길 원한다.
다시 수정할 수 있길 원하고, 되돌릴 수 있길 원하고, 내가 사과하면 그것이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작년은, 2011년은, 그리고 4/4분기는, 나에게, 조금 가혹했다.

그래도 그를 통해 배운 게 있다면,
자존심을 굽혀서 얻으려고해서까지 얻을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 있다는 것과,
내가 시야가 아주 좁을수도 있다는 것과,
의외로 믿음이라는 건 쉽게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과,
절대로 단기간에는 이룰 수 없는 것이 많이 있다는 것들.


자존감이 낮아서 착하고 친절하고 남에게 상처주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은 좋아, 다 받겠지만,
착한 게 제일 좋음. 난 착해지고 싶음. 착한게 쫭이라능! 하지만 앞서서 우선 뭘 좀 열심히 하고나서 착하든가 말든가 하자' ㅡ'-3

====

황지우가 쫭이라능!
무심코 퍼온 좋아하는 시 두 개가 왜 다 황지우야... 난 분명히 기억을 몹시 더듬었는데...
황지우 시집 사야지! 돈 생기면 다 사야지! 많이 사야지! 얍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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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돌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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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은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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