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로 휴가를 떠난 어머니와 집에 함께 남게 된 두 명의 형제. 승승장구해온 고지식한 성격의 시나리오 작가인 동생 오스틴, 사막을 헤매이고 다니던 방탕한 방랑자 형 리. 여기에 얼마만큼의 등장인물을 더하느냐 빼느냐가 좀 더 스토리에 굴곡을 줄 수는 있겠지만, 너무 뻔한 형제간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런 예상을 크게 뒤집지 못하고 형제간의 갈등양상도 아주 진부적인 요소들로 점철된다.
동생은 형의 자유로운 모습을 닮고싶어하고, 형은 동생의 엘리트 가도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둘은 그 사실을 서로 모른다. 이런 진부한 설정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하나의 새로운 요소는 형이 동생의 일에 끼어들어, 동생의 작품을 뒤엎고 자신의 시나리오를 성공적으로 쓰게 한다는 것이다. 사울이라는 제3의 등장인물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동생은 자신이 그동안 매진해왔던 프로젝트를 형에게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나갔더라면 그나마 갈등양상이 확연하게 드러났을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는 점점 이상하게 치닫는다.
크게 아쉬웠던 설정은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번째는, 동생의 영역을 침범한 형 리의 시나리오에 관한 것이다. 사울에게 '정말 훌륭한 다시는 없을 시나리오. 그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평가 받을 만한 것이었고, 계속해서 형 리가 한 탕을 해보려고 하는 소재가 되는 것이 이 시나리오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이 나옴에도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나서도 그 결과는 불투명하다. 조금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었을까.
두번째는, 아버지에 대한 것이다. 극의 처음부터 동생 오스틴은 아버지에 대한 화제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못견뎌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형 리는 아버지를 모셔오겠다며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드러난 실상은 그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방랑자인 형은 잘 모르는 아버지의 비참한 모습을 동생에게서 듣게 되고, 형제는 함께 눈물을 흘린다. 지나치게 신파극적인 요소로 몰고가려는 것이 갑작스러워서 어울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계속 언급되는 것에 비해 형제와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묘사된다. 아예 빼버리거나, 아니면 아예 좀 더 자세하게 다루었어야 할 것 같다.
세번째는, 어머니에 관한 것이다. 극 중에서 어머니는 남자 배우가 연기하게 된다. 연출가와의 대화 시간에 연출가께서 '좀 더 불편한 느낌을 주려했다'고 말씀하신 부분은 아주 잘 실현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전체 장면 중에 일부의 장면을 잘라낸 탓인지, 폭력을 당한 트라우마를 가진 여성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는 단서 자체가 너무 적다. 아예 그런 요소를 빼버리고 형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트라우마를 가진 여성이라는 설정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했어야 옳다.
내가 발췌해놓은 발췌문구들을 찾기가 너무 귀찮아서, 예전 블로그에서 끌어왔다. 너무 기니까 접어야지.
섀도우 - 미치오 슈스케.
p.98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알아. 내 사고에는 바이어스가 걸려있다.... 그런 의미겠지?" "그래, 맞아." 바이어스란 왜곡 혹은 편향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사고에 바이어스가 걸림으로써 사람은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실물을 보지 않고 동전의 그림을 그리게 했을 때 유복한 집에서 자란 아이는 실제보다 작게 그리고 빈곤층 자녀는 크게 그린다. (중략) 확증 바이어스는 어떤 사람이 뭔가를 확신하고 있을 때 생긴다. 그 사람은 주위의 정보 중에서 자신이 믿고 있는 정보만 모으려고 하고 반대로 반증이 되는 증거의 수집은 피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결과적으로 사물에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다.
요노스케 이야기 - 요시다 슈이치.
p.39 "화라는 건 말이다. 결국은 타인에게 뭔가를 바라기 때문에 생겨나는 거야." "타인에게 뭔가를 바라고 그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화를 낸다, 그건 하찮은 속물일 뿐이지. 게다가 화는 아무런 도움도 안 돼. 그저 공평한 눈을 잃어버릴 뿐이지."
집오리와 들오리와 코인로커.
p.220
나는 완전히 주인공인것처럼 살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의 인생속에서는 단역에 불과하다. 그런 사실을 지금 와서 겨우 깨닫는다.
가와사키들의 이야기 속에, 나는 나도 모르게 끼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얼빠진 구석이 있으니 말이다.
p.221
"자는데 깨웠어?"
소리를 내지 않게 조심조심 방에 들어온 그는 이불에 누워 있는 나를 보자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 아이스크림을 먹는 꿈을 꾸던 참이야."
나는 일어나 주방으로 걸어가서는 냉장고 안에서 컵 아이스크림을 두 개 가져와 도르지에게 하나 건네주었다.
"고토미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어. 굉장한데."
도르지는 그렇게 미소 짓고는 컵을 테이블에 놓았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p.105
하루에 두 남자의 눈물을 보다니, 무슨 날이 이렇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지그마지 루트가 우는 모습은 수도 없이 보아왔다. 젖달라 안아달라 울고, 짜증을 내며 울고,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울었다. 하기야 루트는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울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거에 봤던 눈물과 달랐다. 눈물은 내가 아무리 길게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에서 흐르고 있었다.
p.117
물론 의미는 알 수 없었다. 각 페이지에 숨겨진 수수께끼느 어느 하나 공유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하염없이 노트를 쳐다보고 싶었다.
연애중독
p.61
소년같은 정열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게 소년 같은 외로움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떄, 노리코는 자신이 먼저 경계선을 넘어갔다.
p.71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긴 해도, 그걸 딸의 입으로 듣는 것은 쇼크인지도 모른다.(중략) 그러나 자신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아버지와 엄마를 밀쳐버리고 싶은 마음 쪽이 후회보다 강했다.
p.139
세간에서의 이해관계와 상반되는 데가 있기 때문에 사람은 사랑에 이끌리는 것이다.
p.229
간단히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것에 까닭도 없이 화가 났다. (중략) 뭔가를 받고, 뭔가를 해주는 게 아니라 (중략) 상처받고 상처입히기도 하면서 잊을 수 없게 되는 것. (후략)
p.268
"로스트로포비치가...... 박수를 쳐주었대.... 연주가 끝나자마자."
2권
p.100
불과 조금 전 떨쳐버린 사랑이었는데.
p.117
내 발로 걸어가려고 하니 여러 사람들을 상처입히게 돼. 그걸 처음으로 알았어. (중략) 엄마도 상처입혔다. 아버지도. 달리도 알게 모르게 여러 사람들을 상처입혔을지 모른다. 자신도 상처를 입게 되더군. 그가 말했다.
p.197
그때는 그저 무아지경에 있어서 자신의 마음조차 잘 알지 못했다. 연애의 폭풍 속을 무턱대고 달려갔을 뿐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은 무아지경에서 연애를 하고 있을 수가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키사에게로 뛰어들겠다는 마음은 지금의 노리코에게 없다. 냉정하게 자신을 보고, 냉정하게 키사도 보고 있다. 무엇이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노리코도 키사도 상대에게 당당히 얘기해 왔다. 그러니까 몇 번씩이나 싸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사랑이 아닐까.
p.243
난 지금까지 한번도 내 인생을 사랑한 적이 없어. 아사바는 사랑했지만 아사바를 사랑하는 내 자신은 사랑할 수 없었어.
아야가 하는 말을 노리코는 이해할 수 있었다.
쓸쓸함의 주파수 - 오츠 이치
그것은 내게 후회로 남았다. (중략)
그렇지만, 나는 생각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불행한 면 까지도 그리워하면 된다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p.60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 온다 리쿠
요컨데 '난해함'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더해진 것이다. 난해함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권위와 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하기 힘든 페로몬을 발산하는 듯하다. -p.48
문득 목덜미 뒤에서 뭔가가 꿈틀대는 감촉이 느껴졌다. 익숙하고 친근한 정겨운 감촉이다. 이런 순간은 항상 갑자기 찾아온다.
다나베세이코의 에세이였던가. 이런 느낌을 두고,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 같은 감각, 이라고 했다. 손을 내밀어 살짝 고양이를 쓰다듬으려 하지만 항상 잽싸게 달아난다. 지금 당장 그곳에 아이디어가 있는 것은 알지만 섣불리 솓을 뻗으면 사라져 버린다. 고양이가 그 곳에 있을 때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고양이 따위 신경쓰고 있지 않은 듯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슬그머니 다가가는 것이다.
그는 고양이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가까이 있다. 아주 가까이. 아름다운 고양이가.
p.59-60
남자는 마음 한구석에서는, 과거의 여자는 모두 자기 것이고 모든 여자가 틀림없이 자기에게 미련을 갖고 있다는 환상이 있기 때문에 옛 여자가 '만나고 싶다'고 하면 주저없이 만나러 가기도 하지요. (중략)
여자는 미래를 살아가는 동물이니까. 그녀들에게 옛 남자는 어차피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과거거든. 실제로 그런 여자들을 보면 정말 잊어버리더군. 재조정 정도가 아니고 아예 기억에서 말소당하는 거야. 우리 남자들은.
p.80-81
남자들은 오해를 하곤 하지. 이 정도의 여자라면 나도 감당하겠구나 생각하는 것 같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걸기 때문에 그녀 스스로도 오해를 하게 만드는 거지. 그런 여자의 자만심은 대단해. -p.122
(전략) 이렇게 되면 역까지의 길을 되돌아가서 꼼꼼히 찾는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고 우산을 펼쳤더니 찰랑 하며 열쇠가 떨어졌다. 이 장면 어딘가에 사용할 수 없을까. -p.129
제복이라는 건 참 편리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것을 입는 순간 머리는 일에 대한 생각으로 바뀌고 같은 일을 하는 다른 동료와의 연대감도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리한 것은 그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p.243
밖에서 책을 읽다 보면 늘 이상한 심정이 된다.
밖에서는 항상 시간이 흐르고 풍경이 변화한다.(중략) 마치 강물에 나무토막을 꽂은 듯이 혼자만 물결을 거슬러 멈춰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는 것이다. (중략) 그런 느낌의 정체가 자신의 정신 활동이라고 생각하면 육체란 얼마나 무방비 상태로 외계에 노출되어 있는가 싶어 놀랍다.
어느새 몸이 조금씩 젖어들고 있었다. -p.312
나는 이 줄리엣의 순진함이 부러워요. 그보다 오히려 얄밉다고 해야겠지만. 첫사랑에 들떠서 그 사랑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자신이 믿는 사람을 위해 죽어 가요. 그 어리석음이 얄미워요. 자신이 순수하다고 여기는 오만함이 미워요. 사랑이 끝났을 때의 환멸이나, 살다가 느끼는 권태도 알지 못하고. (후략)
p.365
중력의 법칙 - 장 튈레
여자 집배원은 당장 얼굴부터 감싸더니, 그 살인자의 손 안에다 울음을 터뜨린다. -p.61
이봐요 코르네유 선생, 이 어인 기막힌 상황이란 말이오. 이거야 말로 국가의 논리와 가슴의 논리 사이에서 갈기갈기 찢기는 상황이 아닌가. p.137
목요조곡 - 온다 리쿠
40대 중반이지만, 여자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자가 여자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그것을 당연하게 해내는 여자와 노력이 필요한 여자가 있다. 시즈코는 보기와는 다르게 영리하고 터프한 여자라서, 노력도 하고 있겠지만 그녀의 회로에는 그 에너지가 원래부터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에리코는 다르다. 아름다워지는 기쁨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워지고 싶다고 바라기도 하지만, 그것에 에너지를 쏟을 만한 회로가 자기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그것은 금새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만다.
- 목요조곡 p.12
티티새 - 요시모토 바나나
p.55
군대의 본질이야말로 계속해서 한 놈이 딴 놈에 대해 권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지. 하사관은 졸병을, 중위는 하사관을, 대위는 중위를 머리가 돌아 버릴 만큼 못살게 굴고 있단 말이야. 아랫사람에 대한 권력 행사에 쌍방이 다 익숙하게 되지.
p.99
좌우간 우리들은 모두 곤란을 당할 거야. 대관절 고향에서는 그런 것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2년 동안의 사격과 수류탄 던지는 것 - 그런 습관을 양말 벗듯이 벗어 던질 수는 없지 않느냐 말이야, 시간이 흘러도...
p.231
용서해 다오, 전우여. 어찌하여 자네가 내 적이 되었단 말인가? 우리가 이놈의 무기와 군복을 벗어 던지고 자네도 카트와 알베르트와 같이 내 동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게서 20년의 수명을 가져가 다오, 전우여. 그리고 일어서라. 내게서 많은 세월을 가져가 다오. 어차피 나는 그것을 어떻게 써먹으면 좋을지 모르니까.
p.270
만일 우리가 어느 날, 일어나서 그들 앞에 나가서 해명을 요구한다면 우리의 아버지 세대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 전쟁이 없는 때가 온다면 그들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중략) 인생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p.277
우리는 먼저 사병이며, 그 다음 뒤늦게야 창피하게도 가까스로 개개인의 인간이었다.
p.279
이렇게 우리는 극단적이고 피상적이며 폐쇄된 딱딱한 생존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p.282
우리는 포위당했다. 항복하기가 어려웠다. 안개가 우리 위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항복하려고 한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챌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우리들 자신이 항복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순간에는 자기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는 법이다.
p.283
개를 처치하려던 베르거는 골반에 총상을 맞고 운반되었다. 그를 운반하던 사람들 중의 하나는 정강이에 총을 맞았다.
p.289
휴전과 평화가 올 것이라는 맹렬하고도 자극적인 풍문이 떠돌았다.
p.290
우리들의 손은 대지요, 육체는 진흙이며, 눈은 빗물의 웅덩이였다. 우리는 우리가 아직도 살아 있는지 아닌지를 알지 못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 - 레마르크
p.55
군대의 본질이야말로 계속해서 한 놈이 딴 놈에 대해 권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지. 하사관은 졸병을, 중위는 하사관을, 대위는 중위를 머리가 돌아 버릴 만큼 못살게 굴고 있단 말이야. 아랫사람에 대한 권력 행사에 쌍방이 다 익숙하게 되지.
p.99
좌우간 우리들은 모두 곤란을 당할 거야. 대관절 고향에서는 그런 것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2년 동안의 사격과 수류탄 던지는 것 - 그런 습관을 양말 벗듯이 벗어 던질 수는 없지 않느냐 말이야, 시간이 흘러도...
p.231
용서해 다오, 전우여. 어찌하여 자네가 내 적이 되었단 말인가? 우리가 이놈의 무기와 군복을 벗어 던지고 자네도 카트와 알베르트와 같이 내 동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게서 20년의 수명을 가져가 다오, 전우여. 그리고 일어서라. 내게서 많은 세월을 가져가 다오. 어차피 나는 그것을 어떻게 써먹으면 좋을지 모르니까.
p.270
만일 우리가 어느 날, 일어나서 그들 앞에 나가서 해명을 요구한다면 우리의 아버지 세대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일 전쟁이 없는 때가 온다면 그들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중략) 인생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p.277
우리는 먼저 사병이며, 그 다음 뒤늦게야 창피하게도 가까스로 개개인의 인간이었다.
p.279
이렇게 우리는 극단적이고 피상적이며 폐쇄된 딱딱한 생존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p.282
우리는 포위당했다. 항복하기가 어려웠다. 안개가 우리 위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항복하려고 한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챌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우리들 자신이 항복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순간에는 자기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는 법이다.
p.283
개를 처치하려던 베르거는 골반에 총상을 맞고 운반되었다. 그를 운반하던 사람들 중의 하나는 정강이에 총을 맞았다.
p.289
휴전과 평화가 올 것이라는 맹렬하고도 자극적인 풍문이 떠돌았다.
p.290
우리들의 손은 대지요, 육체는 진흙이며, 눈은 빗물의 웅덩이였다. 우리는 우리가 아직도 살아 있는지 아닌지를 알지 못했다.
흑과 다의 환상 - 온다 리쿠
上권
p.25
분명히 다들 그럴테지.
(중략) 그런데도 죽는 순간까지 아직 멀었다. 아직 나한테 그 날이 올 리가 없다, 하고 생각할 테지.
p.100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설명하지 않는다. (중략) 말이란 서비스고, 대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다.
p.110
그래서 붉은 여왕 가설인거야. 생명의 전략에 '적당히'는 용납되지 않아. 늘죽을 각오로 싸워야 하는 거야.
(중략) 그런데 제 3의 생명체는 어떠냐. 남자든, 여자든 될 수 있어.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가 함정인 거야.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잖냐? 인간도 당연히 쉬운 방향으로 가게 마련이야.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라는 건 선택을 저버렸다는 이야기야. 그 시점에서 이미 전선 이탈해 버린 거지.
p.161
만남에 순서는 있을까.
행복할 때는 사고가 종종 똑같은 패턴에 빠지기 쉽지만, 불행해지면 실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下권
p.88
자기혐오는 하지 않기로 하고 있다.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되지도 않고, 시간 낭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에 몇 번은 자기혐오 쪽에서 제멋대로 나를 찾아온다. 그쪽에서 안 올거면 이쪽에서 가주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거침없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내 안에 털썩 주저앉는다.
영원한 것은 없다 - 로랑스 타르디외
p.12-13
난 마음속에서 이윽고 우리를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다.
우린 상처를 입게 될 거야, 주느비에브. 네가 곧 이곳을 떠날 거라면 왜 굳이 상처를 건드려야 할까? (중략) 밤은 더는 무언가를 찾아 헤메는 시간이 아니니까.
한데 난 너를 향해 가고 있어. 네 편지를 읽자마자 미처 웃옷을 꿰어입을 생각도 못 한 채, 도둑처럼 너를 향해 달려가고 있단 말이다.
p.22
난 스물하고도 몇 해 지난 나이이고 삶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이날 저녁만은, 사랑과 영원이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지를 깨닫는다.
.
p.66
기억에 새겨둘 것. 우리에게 기쁨이 존재했음을, 의심하지 말 것.
남자들에게 - 시오노 나나미
p.20
남자들 중에서 귀찮아서 멋부리지 못한다고 변명하는 사람을 본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충고하고 싶다. 왜냐하면 귀찮다는 말은 멋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관련되는 것이기도 하고, 감수성이나 호깃심의 결여를 위장하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다는 변명과 비슷하다. 나는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변명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
(중략)
마지막 항으로 넘어가 보자. '천연기념물'이라고 했지만,(중략) '군자는 의복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식의 가치기준이 적용되는 남자가 아닐까 싶다.
이런 종류의 남자는 거의 예외없이 자기 일에 절대적인 자신을 갖고 있다.(중략) 자신은 멋부리지 않지만 상대방의 치장에 대해서, 특히 여자의 아름다운 복장에 대해서는 실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중략)
그러나 이런 남자가 진짜 나쁜 놈이다. 여자들은 가까이 가지 않는 편이 좋다. 우리 여자들이 이런 남자를 굴복시킨다는 것은 어림없는 이야기다. 귀여운 구석이란 조금도 없다. (중략) 이런 남자는 전면 항복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스위스인에게 내가 원한 철자를 기대하는 건 약간 - 아주 약간 -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의외의 철자Spell의 소유자셨다. Alan de Botton이라신다. 받침 ㅇ이 낯설게 다가오는건 내게 문제가 있는 거겠지만. 알랜 드 버튼. 은 이상할까.
아주 끝장을 봐주지. 라고 생각하면서 잡은 그의 후작. 모든 작가가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듯이. 어깨 힘 꽉 들어간 책은 봐주기 힘들다. 논문이라도 집대성할 기세로 쓴 교양서는 영 멋대가리가 없다. 그런 이유로. 이제 보통씨와는 꽃잎이 분분히 날리는 결별이다.
p.22
이렇게 흔들린다면 사회의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기 마련이다.(중략) 혹시 남의 애정 때문에 우리 자신을 견디고 사는 것은 아닐까?
p.27
(전략) 그래도 귀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중략) 어떤 친구나 연인은 우리가 파산을 하거나 수모를 당해도 우리를 모른 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가끔은 그 말을 믿어볼 수도 있겠지), 우리가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속물들의 매우 조건적인 관심이다.
p.74
한 살짜리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부르고뉴의 선량공필리프는 (중략) "만일 신께서 나를 그렇게 일찍 죽게 하셨다면 나는 행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p. 119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의 등장 The Rise of the Meritocracy>(런던, 1958)에서 이렇게 말했다.(중략) "이제는 자신이 열등한 지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와는 달리 기회를 박탈당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열등하기 때문에 말이다."
p.131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다. 주군의 총애를 받는 신하들의 비위를 맞추지도 않고 그들의 미움을 사도 상관 안 한다. 그저 당신의 주군과 의무를 사랑하며 살 뿐이다. 그래, 그래서 당신이 망한 것이다."_ 라브뤼예르.
p.132
그러나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사무실이나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3에이커와 오리 대여섯 마리와 자유의 유혹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
p.22
이렇게 흔들린다면 사회의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기 마련이다.(중략) 혹시 남의 애정 때문에 우리 자신을 견디고 사는 것은 아닐까?
p.27
(전략) 그래도 귀중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중략) 어떤 친구나 연인은 우리가 파산을 하거나 수모를 당해도 우리를 모른 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만(가끔은 그 말을 믿어볼 수도 있겠지), 우리가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속물들의 매우 조건적인 관심이다.
p.74
한 살짜리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부르고뉴의 선량공필리프는 (중략) "만일 신께서 나를 그렇게 일찍 죽게 하셨다면 나는 행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p. 119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의 등장 The Rise of the Meritocracy>(런던, 1958)에서 이렇게 말했다.(중략) "이제는 자신이 열등한 지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와는 달리 기회를 박탈당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열등하기 때문에 말이다."
p.131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다. 주군의 총애를 받는 신하들의 비위를 맞추지도 않고 그들의 미움을 사도 상관 안 한다. 그저 당신의 주군과 의무를 사랑하며 살 뿐이다. 그래, 그래서 당신이 망한 것이다."_ 라브뤼예르.
p.132
그러나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사무실이나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3에이커와 오리 대여섯 마리와 자유의 유혹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딱잘라 취향이었다. 반했다.
두목,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짐승이라도 엄청난 짐승이에요. 그런데도 두목은 이걸 알지 못해요. 당신에겐 이 인간이라는 것, 세상사라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모양인데(중략). 우리에겐 똑같은 권리가 있다, 이 따위 소리는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당신에게 달려들어 당신 권리까지 빼앗고 당신 빵을 훔치고 굶어 죽게 할 거요. 두목, 좋은 걸 다 걸고 충고하건데, 거리를 둬요! (중략) 안 믿지요.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 뿐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ㅓ요.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거요.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
저런 이기주의!
내가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어쩔 수 없어요, 두목. 사실이 그러니까. 내가 콩을 먹으면 콩을 말해요. 내가 조르바니까 조르바같이 말하는 거요.
p.86-87 中 발췌.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죽으면 말썽이 없지. (중략)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 못 ㄷ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의 사랑과 책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라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p. 159 발췌.
주교의 표정이 밝아졌다. 나는 그의 전 생애를 정당화시켜 준 셈이었다.
p. 317 발췌.
저 엄숙하고 고상한 육체 속에 영혼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p.323 발췌.
조르바의 무릎은 천 번하고도 한번 더 난파했던 그 가엾은 여자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한 치의 땅이었다.
p.327
못 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못 했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나는 당신의 소위 그 <신비>를 살아 버리느라고 쓸 시간을 못 냈지요.
p.337
고독을 느낀 순간 나는 일어났다. 왜? 어디로 간다? 나는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p.364
내 딴에는 자기 위안의 한 경지에 도달했답시고 한번 과부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조르바는 그 긴 팔을 쑥 내밀어 손바닥으로 내 입을 막아 버렸다.
닥쳐요!
그가 구겨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닥쳤다. 부끄러웠다.
p. 385
부불리나가 살아 있을 동안 말입니다. 어느 카나바로도 나만큼 그 여자를 기쁘게 해준 사람은 없습니다.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 세상의 모든 카나바로는 그 여자에게 키스하면서도 자기 함대나, 왕이나, 크레타나, 훈장이나, 마누라나.....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걸 깡그리 잊어버립니다.(중략) 자, 유식한 양반. 이 이야기는 하고 넘어갑시다. 여자에게 그 이상의 기쁨은 없는 법입니다.
p.421
얘야. 천당의 일곱 품계도 이 땅의 일곱 품계도 하느님을 품기엔 넉넉하지 않다.그러나 사람의 가슴은 하느님을 품기에 넉넉하지. 그러니 알렉시스야, 조심하거라. 내 너를 축복해서 말하거니와,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내면 못쓰느니라!
p.430
이성은 내 심장에 질서 회복을 명하면서 박쥐의 날개를 자르고 잘라 더 이상은 날 수 없게 했다.(중략) 나는 일상의 현실을 회복했다.
p.458
이 사람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해야 한다. 잘 보아 두어야지, 절대로 절대로 다시는조르바에게 시선을 돌리지 말아야지!
P.461
순간 글자가 내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나는 글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글자가 천천히 제자리를 잡자 나는 읽었다.
P.467
평생에 한 번이라도 그 아름다운 녹석을 봐야 하는 건데, 당신은 보지 않았어요. 젠장. 일이 없을 때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지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그러나 어제 당신의 편지를 받고 나는 두목 가ㅏㅌ은 펜대 운전사에게는 지옥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P.471
잘 보고 죽을 때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아버지, 누가 이분들을 죽였어요?
아버지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자유.
P.481
그 당시에는 발췌할 만한 문구라고 생각했거나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을 지라도,
지금 볼 때 쓰레기다 싶은 건 그냥 귀찮아서 생략했다.
그러고 나서 제목들을 훑어보니 거의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들이다. 대놓고 편애 ㅋㅋ
물론, 이 블로그에 이미 있는 발췌문구들은 귀찮으니까 정리안함ㅋ
진짜 요즘 책 안읽는구나. 옛날이라고 그렇게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발췌해놓는 성의는 있었는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은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일단, 책 등이 너무 예쁜 책이다.
책이 굵기가 꽤 되니까 할 수 있는 디자인이겠지만, 책 표지보다 책 등이 열 배는 더 마음에 든다.
원래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지 못한 책은 리뷰를 쓰지 않지만,
절대로 끝까지 읽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서서, 그냥 쓴다.
일단 조금 종교적이다. 주인공의 동생만이 종교적이지만 꽤 종교적인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종교를 강압하는 이야기는 아니어서 거슬리진 않았지만, 의외로 종교적이었다.
문장은 좋다. 이야기를 잘한다. 스토리도 좋다. 인물들도 다 살아 있다.
근데 인물이 너무 많다. 이름도 다 비슷하다. 내 기억력을 시험한다.
1974년 8월 7일, 필리프 프티가 세계무역센터 빌딩들 사이를 줄타기 한 사건이 중심 소재다. 그런데 어쩐지 그냥 그건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취급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좋은 문장과 좋은 이야기인 건 알겠는데,, 좀 지루하고 따분해서 끝까지 못 읽겠다.
좋은 문장을 쓸 줄 안다는 건 문장을 매력있게 조합할 수 있다는 이야기라서,
소제목도 한결같이 매력적이고, 제목까지 매력적이다.
몇 가지 소제목만 나열해 본다.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천국이 싫다는 것이 아니라 이곳이 좋습니다.'
'거대한 지구를 영원히 돌게 하자.'
'이건 그 말이 지은 집이다.'
p.55
"두려움 조각들이 사방에 떠다녀." 그가 말했다. "그건 먼지 같아. (중략) 먼지는 분명 거기 있고 사방에서 내려와 모든 걸 덮어버리지. 우리는 먼지를 숨 쉬고 먼지를 만지고 먼지를 마시고 먼지를 먹어. 하지만 너무나도 작기에 우리가 알아보질 못하는 거야. (중략)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거야. 잠시 그대로 서 있으면 바로 거기 있어, 이 두려움이, 우리의 얼굴과 혀를 뒤덮으며 말이지. 우리가 멈춰서서 이 두려움을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절망에 빠져버리게 될 거야. 하지만 우리는 멈춰 설 수 없어. 우리는 계속 가야만 해."
p.63
그녀는 후두암으로 목소리의 대부분을 잃었다.
p.72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진짜로 예수의 살아 있는 이미지라면 왜 그들이 저렇게 빌어먹게 비참한 건데? 말해 보라고, 코리건. 왜 저들이 저렇게 거리에 서서 자기들의 불행을 다른 세상 사람들 앞에서 다 보여 주고 있는 건데?
p.78
나는 대학 시절 언젠가 들었던 신화가 떠올랐다. 세상에는 서른여섯 명의 성자가 숨어 있는데 그들은 모두 보잘것없는 사람들, 목수, 구두장이, 양치기의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들은 지상의 슬픔을 견뎌내고 있지만 모두 하느님과 소통하는 통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어느 숨겨진 성자는 잊혀졌다. 그 잊혀진 성자는 홀로 남겨져 그가 너무나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소통의 통로를 가지지 못한 채 힘겹게 싸우고 있다. (중략) 동생은 홀로 슬픔을, 이야기들의 이야기를 견뎌내고 있었다.
p.301
"혹시 뉴욕 다운타운 근처에 계십니까, 선생님?"
"누구세요?"
"혹 우리를 위해 위를 쳐다봐 주실 수 있나 해서요?"
p.411
그냥 거기 서서, 정확하게 줄의 중간 지점, 양쪽 타워로부터 100피트 되는 그곳에 서서 눈을 감고 몸을 정지하자 줄이 사라졌다.
(중략)
그는 그가 오직 첫 발걸음에 대해서만 생각했었다는 것을, 마지막 발걸음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략)
그 후 몇 년 동안 그는 여전히 그 위 그곳에 있을 것이다. 슬리퍼를 신고, 검은 발로, 민첩하게. 문득문득 그럴 것이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또는 폭풍이 오기 전 판자로 오두막 창문에 덧물을 대다가, 톤태나의 줄어들고 있는 초원 그 키 큰 풀밭 안에서 걷고 있다가, 또다시 공중에 있을 것이다. 발가락 사이로 팽팽한 케이블 줄을 느끼며, 바람과 서로 가로질러 엮이며, 불현듯 느끼는 높이감. 그의 아래로 펼펴지는 도시. 그의 기분이 어떻든, 어느 곳에 있든, 뜻밖의 순간에, 그것은 되돌아올 것이다.
1990년 출판된 책이다. 내 출생년도 전후로 있었던 배우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중고서점에 갔다가,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들이 붕뜨지않게 하려면, 사례집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냉큼 집어온 책이다.
책의 가치가 그 책의 가격으로 결정되는 건 아닐텐데, 싸게 샀노라며 냉큼 접어가며 읽었다.
이런 낡은 책들을 읽으면, 그 내용보다, 시간을 먼저 인식한다.
그 때의 이대부고는 머리를 길러도 되는 자유분방한 학교였고,
그 때의 이대 사학과를 졸업한 선배는 이 책을 냈고,
그 때의 산울림소극장에서 최초로 고도를 기다리며가 공연되었단다.
그냥, 인터뷰를 모아놓은 작고 낡은 책인데도, 참 여러가지 군상이 보여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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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을 하다 우연히 '구히서'는 오역이 그냥 필명으로 굳은 거고 작자의 본명은 구희서씨라고 한다.
그는 "순수한 것을 보면 기분 좋다. 나쁜 연극을 봐도 좋다"고 했다. 강단 비평 쪽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말이다. 연극이란 장르의 순수성에 대해 말했다. 그의 마음에 와 닿은 무대는 "난폭, 섹스 없이 깊은 감정을 미묘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는 "영상, 짓거리가 과한 것은 싫다"며 "내 시대의 미적 기준이 좋다"고 했다."(한국일보 2010년 인터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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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그중에서 그가 잊지 못하고 아직도 감탄하는 선배는 김선영씨다. "그분 연기는 무대에서 하는 것만 보면 저게 연기인지 진짜인지 도무지 구별이 안가요. 나도 처음에는 그 양반 연기가 어디서부터 연기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구별을 못했습니다. 연습하시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죠. 연습할 때 하나하나 역의 성격, 습성, 버릇을 구축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무대 위의 그 인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깨달을 수가 있었죠. 그건 감탄을 아무리해도 모자랄 정도였어요. 난 그 양반 흉내를 낸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감탄하고 반해서 따라다녔습니다."
p.87
단란한 가정, 스캔들 없는 미남배우가 된 것은 '내가 그렇게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p.98
무대에 나설 때의 특별히 집착하는 버릇은 없다. 오히려 나는 모든 버릇을 버린다. 공연할 때면 게으르려고 애쓴다. 사람도 안만나고 일도 안하고 그냥, 철저하게 게으르려고 한다. 깨질까 부서질까 염려하듯 몸을 아끼고 나 자신을 위해 준다.
연극인이 살아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연극이 살아있고 그 관객이 무대를 요구하는, 그 요구가 모두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있는 한 연극은 있고 또 있어야 한다. 이건 일종의 생리적인 필요다.
내가 연극을 하는 가장 큰 이유 그 역시 하나의 생리적인 필요다.
지금 이순간 우리의 상황, 뒤섞이고 갈팡질팡하는 환경의 핵심을 찾아내는 젊은 작가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그 속에서 내 역을 찾고 싶다. 상황에 몰려 그 상황을 가장 아프게 그러나 맑게 겪어나가는 성격의 주인공을 찾고 싶다.
p.234
나는 대학시절 연극훈련을 많이 한 편이다. 학교과정에만 의존한다면 1년에 1번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지만 나는 처용이라는 써클을 만들어 1년에 6편 정도, 모두 30편 가까운 작품을 해보고 졸업을 했다. 그러나 실험에 처음 들어갔을 때 노역을 한다던지 <허생전>같은 전통양식의 작품을 하면서 새로운 억양을 배워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가 민예를 만들어서 또 한번 새로운 고생을 했다. 판소리 탈춤 가곡가사를 배우고 비극적인 작품이나 표현만이 아니라 희극적인 감각을 키워야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무대현장에서 배우면서 일을 했다.
P.236
그러나 어떤 경우에라도 배우는 무대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창조자다. 무대 공연현장에서 관객과 만나서 작품을 전달하는 것은 배우이므로 언제 어떤 경우에라도 배우는 주요하다. 나는 배우의 중요성이나 보람 같은 것을 얘기할 때 배우의 삶은 1백년 이상, 다른 사람들의 몇배를 사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배우는 연극 속에서 수많은 삶을 살기 때문이다. 좋은 배우는 연극 속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많이, 그리고 철저하게 살 수가 있다.
P.249
제한된 내무반 생활에서 나는 정치, 사회, 경제의 원형을 발견했고 인간이 폭력 앞에 얼마나 비굴해질 수 있는가 지성이니 지조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보면서 인간의 속성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나는 어느날 도대체 내가 어떤 말을 얼마나 하는지 세어본 적이 있다. 50개 미만의 간단한 일상 용어로 하루가 간다는 걸 깨달았다.
p.267
그의 얼굴 그의 모습에는 꾸밈 이전의 진짜 같은 어떤 현장성이 있다. 그의 연기 그의 등장은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그의 존재는 뭔가 실제의 부피를 갖고 있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보다 오히려 극중에 그 인물이 무대에 직접 나와 좀 어색해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p.290
나는 멋있는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연극을 처음 보고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나서게 된 것은 최성연씨가 권해준 드라마센타의 <햄릿>(62)을 보고나서였다. 기가 차게 좋았다. 다음날 또 봤다. 최상현씨의 햄릿은 또 더 좋았다. 연기란 저런 것이다. 저런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연히 큼직한 배역만을 생각했으나 오샤량선생은 내게 대사라고는 10마디뿐인 국서의 이웃 친구 영식역을 주셨다. 그나마도 하루 연습할 때마다 한마디씩 잘려나가더니 나중에는 겨우 한마디만 남았다. 그동안 내 나름대로 고민도하고 투정도하다가 나중에는 내 마음을 가다듬어 열심히 했다. 첫날 공연을 끝내고 들어오는데 오선생은 눈에서 불이 번쩍나게 따귀를 때리셨다. 대사가 엉망이라고 야단을 하시는 것이었다.
자료로 그냥 써먹고 말기엔 아쉬운 책이다.
좋은 이야기가 많은데도, 다 옛날 인물과 지나간 이야기들이라 묻혀버리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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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이야기, 작부심, 그런 것들과
불편하지 않은 이야기, 독자가 보고 싶은 이야기, 철저한 로맨스나 적당하게 슬프고 적당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들,
그 균형을 대충 알 것 같다.
일상에서 모두가 서로에게 감추고 있는 어떤 영역이 있다.
가령, 남들 앞에서 똥을 싸진 않는다.
그래서 소설에서 굳이 그 이야기를 매번 언급하지 않아도 괜찮은거라고 생각한다.
우린 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은 알 필요가 있지만 주인공의 소화상태 배변상태를 알 필요는 없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굳이 불편해질 필요는 없는 거다.
일상적으로 남들 앞에서 가식을 떠는 만큼만,
글과 영상에서도 가식을 떨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가식은 나쁜거라고, 또 한동안의 너무 솔직한 무리들에 휩싸여 있다보니 마냥 그렇게 생각해봤는데,,
좀 멀찍이 떨어져서 보니까, 아니, 가식은 좋은거다.
허니와 클로버를 보면서 생각했다.
빵에 꿀과 클로버를 넣어 먹으면서 우는 장면을 그리기 위해서, 그 장면 하나에 저 제목을 지은 거란 말이냐.
앵무새 죽이기를 읽으면서 생각했다.
처음엔 공기총을 아이손에 쥐어주곤 앵무새는 죽이면 안되는 새라고 말한다. 해를 끼치지 않고 마음을 열고 노래를 부른다고.
둘째론 달아나건 서있건 앉아있건 불구자를 죽이는 건 새를 쏴 죽이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부당한 처사라는 거다.
셋째론 밥 이웰의 죽음에서 혐의를 벗겨주는 테이트에게 , 그 혐의는 앵무새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아 왜이렇게 제목을 활용하는데 천재적인 인재가 많을까. 아 짱낰ㅋ
그냥 읽기 전엔 상당히 폼재는 거만한 제목이라고 생각해서 싫어했는데, 막상 읽고 보니 좋아졌다.
부끄럽지만 사실 이 책은 부산 집 내 책장에 꽃혀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가 싫어서 버틴 이유가 바로 그거다.
p.116
언젠가 아빠는 나에게 형용사를 몽땅 빼버리고 나면 사실만 남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p.145
"아빠, 깜둥이들을 변호하세요?"
"물론 그렇단다. 스카웃, 그런데 깜둥이라고 말해선 안 돼. 그 말은 품위없는 말이거든."
"학교에서는 모두 다 그렇게 부르는데요."
"이제부턴 다른 사람은 다 그래도 너만은 그러지 않는 거야."
"제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자라는 걸 원치 않으시면서, 왜 저를 학교에 보내세요?"
p.189
"우리가 알고 있기를 바라셨다면 아빠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을 거야. 아빠가 그 솜씨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면, 우리에게 말씀하셨을 거라고."
"어쩌면 아빠가 깜박 잊어버렸을 수도 있잖아."
"아냐, 스카웃. 그건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거야. 아빠는 정말 나이가 많으셔. 하지만 아무 일 못 하셔도 난 상관하지 않을 거야- 아빠가 그야말로 아무 일도 못 하신다 해도 난 상관 않을 거란 말이야."
p.379
"물론 정직하지는 않다만 사람들에게 아주 도움이 되거든. 핀치 아가씨. 이거 비밀이지만, 사실 난 술을 별로 마시지 못해. 하지만 내가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에 지금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전혀, 정말이지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해."
혼혈아들을 낳았고 누가 그것을 알아도 상관하지 않는 이 죄 많은 아저씨 말을 듣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아저씨한테는 아주 매력적인 데가 있었다. 고의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사기치고 있는 사람을 나는 지금껏 한 사람도 만나본 적이 없었기 떄문이다.
p.388
배심원 여러분, 법정은 제 앞 배심원석에 앉아 계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건전해야만 건전할 수 있습니다. 법정은 오직 배심원이 건전한 만큼 건전하고, 배심원은 그 구성원이 건전한만큼 건전합니다.
p.401
"그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어떻게 말이에요?"
"나도 몰라.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어. 전에도 그랬고 오늘 밤도 그랬고, 앞으로도 또다시 그럴 거다. 그럴 때면- 오직 애들만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구나. 잘 자거라."
p.441
하지만 나는 그 세계보다는 아빠의 세계에서 더 편안함을 느꼈다. 헥 테이트 아저씨 같은 사람들은 놀려대려고 순진한 척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중략) 하지만 나는 남자들이 좋았다. 아무리 욕을 해대고 술을 마시고 노름을 하고 담배를 씹어도 그들에게는 내가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p.453
서 있건 앉아 있건 아니면 도망치건, 불구자를 죽이는 건 죄악이라고 잘라 말씀하셨다. 톰의 죽음을 사냥꾼이나 아이들이 노래부르는 새를 무분별하게 죽이는 행위에 견주셨다. (중략)
톰은 메이옐라 이웰이 입을 열어 소리를 지르는 순간 바로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p.528
"스카웃, 우리가 궁극적으로 잘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멋지단다."
이 책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스토리라인이 그리 명확한 건 아니라서, 지금 적지 않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는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떠올랐다.
아이의 시각으로 비판할 거 다하고 순진한 척 다하는 비열한 작가들 같으니. 좀 다른 맥락과 다른 이야기지만, 둘은 꽤 닮아 있는 것 같다. 둘 다 너무 좋다.
덮을 때 쯤엔, <수레바퀴 아래서> 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건 좀 자신이 없다. 영역을 확장하고 밤과 낮 궁시렁 궁시렁 한게 데미안인지 수레바퀴 아래서인지 잘 모르겠다. 뱀발이지만 아타락시아로 검색하면 데미안이 나올 줄 알았는데 묘한 NT가 검색되서 깜놀ㅋㅋㅋ 아프락사스는 한방이었지만.
어쨋든 아주 끝에서 낮이 찾아왔다고 하는 얘기는 너무 흡사해서 패러디가 틀림없다! 고 해주고 싶었는데, 둘 중 어느 작품인지 잘 기억이 안난다. 둘 다 아주 싫어해서 곤욕스럽게 읽었으니 그도 그럴 만 하지만.
번역 얘기를 하는 걸 참 싫어하는데,,,, 유독 일본 소설이나 NT에 그런 경향이 강한 것 같지만 내용이 쓰레기라고 그냥 말하면 될 것을 '번역을 잘 못해서'나부렁거리는 걸 듣고 있으면 화가 난다. <건지감자파이북클럽>얘기만 나오면 사람들이 번역 운운하는데, 그 것도 좀 묘하다. 재번역 출간됐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굳이 다시 읽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이 책은 번역 얘기를 안할 수가 없는 게,,, 아 왜 번역 왜 이렇게 잘함.. 어휘 하나하나가 자연스럽다. 앵무새 죽이기를 읽으려고 검색해봤는데, 꽤 오래된 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도 이 책 이후의 판본이 없길래 별 기대안하고 읽었는데,,, 굳이 새로 번역할 필요가 없었던 거겠지.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일관되게 이렇게 번역해 낼 수 있다니, 천사다, 아니 어떤 의미론 악마다. 으워어..
스토리 라인은, 상당히 묘했다. 다 하나 하나가 쓸모없는 소재고 쓸모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면 다 중요했다.
아마 훗날 회상해보면, 은둔자가 집에서 나왔다!!!! 는 거랑 재판에서 졌는데 죽어버림!!!! 밖에 기억이 안날거다. 나머지는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소소하다.
의외로 책 마지막 장을 덮는 뿌듯한 순간에, 모든 것이 주제로 귀결된다. 그래, 모든 인간은...
1960년대에 영화로도 제작됐다길래 스토리를 찾아보고 빵빵 터졌다.
이 소설의 산만함을 그대로 전해주란 말이야, 으아니 저런 포장의 대가들ㅋㅋㅋㅋㅋ
일단 처음 느낀 건, 아무래도 저번과 이번 무대의 차이점들.
산울림 소극장에서 고작 몇 발짝 떨어진 포스트 극장인데도 무대가 주는 크기와 깊이와 기둥의 유무의 아주 사소한 차이와.. 돈주머니가 떨어지느냐 던져지느냐의 사소한 차이들. 분명 배경음악도 달라진 것 같은데 그렇게 잘 기억이 나지 않으니 패스.
이런 사소한 것들은 넘어가고,
연극의 얘기를 해보자.
관객이 많고 적고, 웅성거리고, 조명이 너무 어두워지지 않는데서 조금 차이는 있었던 것 같지만,
산울림 소극장에서 봤을 땐 음악이 사그라들고, 조명이 꺼지고, 흰 옷의 남자가 등장하는 게 너무 좋았다.
아주 깜깜해서 아무것도 사위가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데 하얀 색은 눈에 보이니까, 그 흰색에 모두가 주목하게 되는 게 너무 좋았다.
종이 만 것을 휘둘러 소리를 내는 것도 긴장감을 줘서 좋았다.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가진 채, 시작 전 어두울 때 나는 소리들은 다 너무 기분 좋은 긴장이 된다.
스토리 자체는 연극의 스토리라기보다 다자이 오사무의 글에 대한 이야기가 될 테다.
그래서 스토리의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황금풍경>은 일인다역의 소화가 너무 좋았고, 양말을 벗는 능청스러움이 너무 좋았지만, 여자배우님의 노랫소리가 들려올 때 허무함을 느껴야 하는 게 좀 곤란했다. 연극으로 채택하기엔 묘사하는 재미가 있지만, 어쩐지 시작과 끝이 없는 이야기라는 느낌.
그것과는 별개로 여자배우님의 독백같은 그 노래랄까 허밍이랄까, 순수한 느낌이 너무 와닿았다.
<개는 맹수다>는 여러모로 너무 좋았다. 녹아있는 고민들과 표현방식도 너무 좋았다. 해설자와 등장인물, 인간과 개의 경계 없이 편한데로 연기하는 그 모든 치열함이 너무 좋았다. 태클을 걸 것도 없이 너무 좋았다. 두 배우의 시선이 어느 한 지점에 맞닿아 있을 땐, 정말 거기 포치가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배우가 같은 동작을, 서로 시선을 전혀 교환하지 않는 게 보이는데도, 같은 포즈로 같은 동작을 하는 그 것들이 너무 좋았다. 아 진짜 다 좋았다. 단편이라서 있을 수 있는 얘기라는 건 알지만, 이걸 어떻게 1시간 20분으로 늘일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 하나의 연극이어도 좋았을지 모르겠다.
<직소>는,, 솔직히 좀 거북했다. 단순히 내게 종교적인 이야기는 죄 거북하다. 그래도 찬양하거나 비하하는 어느쪽의 극단으로도 가지 않고, 그냥 '한 사람'의 이야기라서 괜찮았다. 풀어내는 방식 자체는 좋았다. 의자를 똑바로 쌓아올렸다가 다시 무너뜨려 엇비슷하게 쌓아올리는 방식도 좋았고, 의자를 넘어뜨리는 모든 장면이 좋았다.
처음엔 남자배우 한 분은 탐욕이거나 단순한 악(惡)의 유다를, 그리고 여자배우분은 선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사랑하는 자의 유다를, 그리고 또 다른 남자배우분은 사랑이 도를 넘어 집착하게된 소유욕의 유다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셋이 그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도 하고.
그런데 뒤로 갈수록 잘 알수 없어졌다.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너무 지레짐작한 것 같기도 하고, 그 모든 유다가 뒤에 가서 후회와 절망과 비참함에 다 함께 빠져들어 뒤섞이고 구분되지 않는다는 설정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모르겠다ㅋㅋㅋ 두번을 봐도 모르면 그냥 모르는거다.
대본에 흔히 쓰는 (사이)라는 게 왜 중요한 건지를 알 것 같았다. 배우의 침묵은 바로 주목과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으으으 침묵마저 좋았다.
나레이션을 하는 내내 한 배우분은 웃음을 계속 띄고 한 배우는 계속 무표정한 게 의도였는지 어쨋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 만면의 웃음이라니ㅋㅋㅋ 계속 따라 웃고 있었다ㅋㅋㅋ
묘하게 이상한 데서 빵빵 터지는 관객분들 덕분에 좀 묘하게 계속 분위기가 밝아서 좀 수상하긴 했지만ㅋㅋㅋ 그래도 너무 좋았다.
화이팅, 화이팅//
옛날에, 어떤 연극평론집을 읽다가 기억에 남은 구절이 있다. 확실한 단어와 어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맥락이었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극본을 쓰는 게 아니라, 신춘문예로 등단된 사람들이 연극의 극본을 쓰고, 갑자기 인정받는 작가가 된다.
우리나라의 이런 시스템이 연극을 재미없게 만들고, 사람들이 굳이 영화보다 더 비싼 돈을 내면서 연극을 보려고 들지 않는 까닭이다.
글쎄,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좀 옛날의 아주 낡은 책이었으니 요즘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겠고...
그냥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이번이, 신춘문예 등단 작품의 연극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르고 있었더라면 굳이 의식하지 않고 봤을텐데, 의식하고 보니 괜히 평가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일단, 주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연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선명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고민되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 자연스러운 연기가 거기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방금 막 온 것 같은 풋풋한 청년과 부산사투리의 구사가 자연스러운 아가씨와, 메마른 웃음을 눈으로 보여주는 남자.
무슨 4D도 아니고 족발냄새를 맡으며 연극을 보긴 또 처음이여서, 정말 살아있는 연극이구나, 해서 좋았고, 근데 너무 냄새가ㅋㅋㅋㅋ
웃음의 포인트도 좋았고, 파키스탄 청년의 억양도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가야금 반주가 너무 좋았다.
가야금 합주같은 건 여러번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지만, 그 때도 이렇게까지 선명한 소리를 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소품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인데도 단아하게 조용히 의자에서 걸어나와 연주하시는 가야금 소리가 너무 좋았다.
연극이 끝나고 시계를 보고,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1시간짜리 연극이었다.
좋았던 점들은 충분히 언급했으니 이제 아쉬운 점을 말해보자면,
연극은 좋았지만, 1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파키스탄에서 온 불법체류 노동자와 사장의 갈등이 어떻게 해결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아가씨,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까. 웃음을 주는 존재로써, 연극 전체에 아무런 역할도 없이 그냥 장단을 맞춰주는 구실로써, 라디오 같은 소품으로 쓰였을 뿐이다. 확실히 연기는 정말 좋았지만, 그 아가씨의 배역은 도대체 뭘 위해서 존재하는 건지 나는 연극이 끝날 때까지 알 수가 없었다.
좀 더 길었어야 했다.
파키스탄 청년이 협박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사장의 유혹에 넘어가건 그렇지 않건,
사장이 울다 지쳐 쓰러져 잠들 것이 아니라 어떤 식이든 갈등의 고조 후에 해결이 났어야 했다.
연극이 끝나고 모두들 박수를 치는데,
나는 연극이 정말 끝난건지를 알 수 없어서, 배우들이 인사할때까지 멍하니 있었다.
정말 그런 데서 끝낼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끝난 거더라.
이런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풀어낼 수 있다니, 너무 좋았고, 연기도 너무 좋았지만,,
뭐라고 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남아있다.
p.65
"너희들의 관계는 아무리 봐도 공의존에 가까워."
중략.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중독 증상의 일종이야. 예를 들면 알코올 중독증 환자가 있다고 치자. 환자에게는 곁에 있어줄 간병인이 필요해. 그리고 그 간병인이 헌신적으로 환자의 시중을 들어주게 되는데, 그것이 도를 넘는 헌신일 경우에 그 상황을 공의존 증상이라고 판단하는 거지. 봉사하는 것에 취해 있는 상태야. 남녀의 연애관계에서도 가벼운 수준의 공의존 증상은 흔히 볼 수 있어.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아. 서로가 서로를 망쳐버리니까. 너희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약간의 주의는 해두는 편이 좋을 거야."
p.115
너는 말이지,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화를 낼 수 있는 인간이구나, 그런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 나쁘진 않지만 좋지도 않아."
(중략)
타인을 위해서 감정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은 말이지, 무슨 일이 일어났을 ㅐㄴ 남의 탓을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지. 난 너 같은 사람이 최고로 싫어.
p.199
"자메뷔구나."
"뭐지, 그건?"
"데자뷔의 반대야. 몇 번이나 경험했으면서도 어쩐지 처음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의미. 감각이 마비되거나 했을 때 일어난대."
p.?
의식을 잃은 인간, 자기 자신을 지지하는 것을 그만둔 인간은 상상 이상으로 무겁다.
p.213
무슨 일이 있어도 친구를 소개하지 않는다는 룰. 친구는 정보가 아니니까.
p.235
소녀만화도 아닌데.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백 명의 인간이 있으면 그만큼의 연애가 존재하게 되지. 왜 그렇게 된다고 생각해?
(중략)
내가 내놓은 결론은 이거야. 상대가 자신을 좋아해준다는 것, 그것은 아주 기쁜 일이기 때문에, 상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상대를 좋아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
그냥 반전이 신선하달건 없지만,
조금 우울하고 기분 처지는 반전이었다.
반전의 반전 쪽은 신선했지만,
너무 신선해서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