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웨스트, 진정한 서부. 

그림에 그린 듯한 형제의 설정을 보면서부터 크게 기대감은 갖지 않고 본 연극이었다. 

알래스카로 휴가를 떠난 어머니와 집에 함께 남게 된 두 명의 형제. 승승장구해온 고지식한 성격의 시나리오 작가인 동생 오스틴, 사막을 헤매이고 다니던 방탕한 방랑자 형 리. 여기에 얼마만큼의 등장인물을 더하느냐 빼느냐가 좀 더 스토리에 굴곡을 줄 수는 있겠지만, 너무 뻔한 형제간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런 예상을 크게 뒤집지 못하고 형제간의 갈등양상도 아주 진부적인 요소들로 점철된다. 

동생은 형의 자유로운 모습을 닮고싶어하고, 형은 동생의 엘리트 가도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둘은 그 사실을 서로 모른다. 이런 진부한 설정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하나의 새로운 요소는 형이 동생의 일에 끼어들어, 동생의 작품을 뒤엎고 자신의 시나리오를 성공적으로 쓰게 한다는 것이다. 사울이라는 제3의 등장인물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동생은 자신이 그동안 매진해왔던 프로젝트를 형에게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나갔더라면 그나마 갈등양상이 확연하게 드러났을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는 점점 이상하게 치닫는다.

크게 아쉬웠던 설정은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번째는, 동생의 영역을 침범한 형 리의 시나리오에 관한 것이다. 사울에게 '정말 훌륭한 다시는 없을 시나리오. 그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평가 받을 만한 것이었고, 계속해서 형 리가 한 탕을 해보려고 하는 소재가 되는 것이 이 시나리오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쓰는 장면이 나옴에도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나서도 그 결과는 불투명하다. 조금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었을까.

두번째는, 아버지에 대한 것이다. 극의 처음부터 동생 오스틴은 아버지에 대한 화제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못견뎌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형 리는 아버지를 모셔오겠다며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드러난 실상은 그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방랑자인 형은 잘 모르는 아버지의 비참한 모습을 동생에게서 듣게 되고, 형제는 함께 눈물을 흘린다. 지나치게 신파극적인 요소로 몰고가려는 것이 갑작스러워서 어울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계속 언급되는 것에 비해 형제와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묘사된다. 아예 빼버리거나, 아니면 아예 좀 더 자세하게 다루었어야 할 것 같다.

세번째는, 어머니에 관한 것이다. 극 중에서 어머니는 남자 배우가 연기하게 된다. 연출가와의 대화 시간에 연출가께서 '좀 더 불편한 느낌을 주려했다'고 말씀하신 부분은 아주 잘 실현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전체 장면 중에 일부의 장면을 잘라낸 탓인지, 폭력을 당한 트라우마를 가진 여성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는 단서 자체가 너무 적다. 아예 그런 요소를 빼버리고 형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트라우마를 가진 여성이라는 설정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게 했어야 옳다. 

같은 연극을 두 번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저번에 이 연극을 봤을 때 남겼던 감상을 지금 다시 읽었다.
아주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봐서 더 좋았을테고, 내가 그 동안 무대예술에 많이 익숙하지 않아서 더 좋았을터였다.
처음 연극을 봤을 때 정말 신선했고, 정말 충격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그 때 느꼈던 '좋음'이, 그냥 새로운 것에서 오는 충격이었을까 하는 의문에 다시 같은 연극을 보러 갔다.
2달 만이다.

그리고 다시 놀라고 다시 또 좋았다.
프린지 페스티벌 기간 중 그렇게 관객석이 비좁도록 사람이 들어차는 것도, 통로까지 채우는 것도 처음 봤다.
아무래도 이틀 올라가는 연극인데, 첫째날의 입소문이 타서 둘째날에 사람이 몰린 탓이겠지.

< 이하 사진의 출처 = 양손프로젝트 http://blog.naver.com/yangsonp>



일단 처음 느낀 건, 아무래도 저번과 이번 무대의 차이점들.
산울림 소극장에서 고작 몇 발짝 떨어진 포스트 극장인데도 무대가 주는 크기와 깊이와 기둥의 유무의 아주 사소한 차이와.. 돈주머니가 떨어지느냐 던져지느냐의 사소한 차이들. 분명 배경음악도 달라진 것 같은데 그렇게 잘 기억이 나지 않으니 패스. 

이런 사소한 것들은 넘어가고, 
연극의 얘기를 해보자.

관객이 많고 적고, 웅성거리고, 조명이 너무 어두워지지 않는데서 조금 차이는 있었던 것 같지만,
산울림 소극장에서 봤을 땐 음악이 사그라들고, 조명이 꺼지고, 흰 옷의 남자가 등장하는 게 너무 좋았다.
아주 깜깜해서 아무것도 사위가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데 하얀 색은 눈에 보이니까, 그 흰색에 모두가 주목하게 되는 게 너무 좋았다. 
종이 만 것을 휘둘러 소리를 내는 것도 긴장감을 줘서 좋았다.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가진 채, 시작 전 어두울 때 나는 소리들은 다 너무 기분 좋은 긴장이 된다.

스토리 자체는 연극의 스토리라기보다 다자이 오사무의 글에 대한 이야기가 될 테다. 
그래서 스토리의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황금풍경>은 일인다역의 소화가 너무 좋았고, 양말을 벗는 능청스러움이 너무 좋았지만, 여자배우님의 노랫소리가 들려올 때 허무함을 느껴야 하는 게 좀 곤란했다. 연극으로 채택하기엔 묘사하는 재미가 있지만, 어쩐지 시작과 끝이 없는 이야기라는 느낌. 
그것과는 별개로 여자배우님의 독백같은 그 노래랄까 허밍이랄까, 순수한 느낌이 너무 와닿았다.




<개는 맹수다>는 여러모로 너무 좋았다. 녹아있는 고민들과 표현방식도 너무 좋았다. 해설자와 등장인물, 인간과 개의 경계 없이 편한데로 연기하는 그 모든 치열함이 너무 좋았다. 태클을 걸 것도 없이 너무 좋았다. 두 배우의 시선이 어느 한 지점에 맞닿아 있을 땐, 정말 거기 포치가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배우가 같은 동작을, 서로 시선을 전혀 교환하지 않는 게 보이는데도, 같은 포즈로 같은 동작을 하는 그 것들이 너무 좋았다. 아 진짜 다 좋았다. 단편이라서 있을 수 있는 얘기라는 건 알지만, 이걸 어떻게 1시간 20분으로 늘일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 하나의 연극이어도 좋았을지 모르겠다.




<직소>는,, 솔직히 좀 거북했다. 단순히 내게 종교적인 이야기는 죄 거북하다. 그래도 찬양하거나 비하하는 어느쪽의 극단으로도 가지 않고, 그냥 '한 사람'의 이야기라서 괜찮았다. 풀어내는 방식 자체는 좋았다. 의자를 똑바로 쌓아올렸다가 다시 무너뜨려 엇비슷하게 쌓아올리는 방식도 좋았고, 의자를 넘어뜨리는 모든 장면이 좋았다.
처음엔 남자배우 한 분은 탐욕이거나 단순한 악(惡)의 유다를, 그리고 여자배우분은 선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사랑하는 자의 유다를, 그리고 또 다른 남자배우분은 사랑이 도를 넘어 집착하게된 소유욕의 유다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셋이 그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도 하고. 
그런데 뒤로 갈수록 잘 알수 없어졌다.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너무 지레짐작한 것 같기도 하고, 그 모든 유다가 뒤에 가서 후회와 절망과 비참함에 다 함께 빠져들어 뒤섞이고 구분되지 않는다는 설정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모르겠다ㅋㅋㅋ 두번을 봐도 모르면 그냥 모르는거다.



대본에 흔히 쓰는 (사이)라는 게 왜 중요한 건지를 알 것 같았다. 배우의 침묵은 바로 주목과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으으으 침묵마저 좋았다. 
나레이션을 하는 내내 한 배우분은 웃음을 계속 띄고 한 배우는 계속 무표정한 게 의도였는지 어쨋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 만면의 웃음이라니ㅋㅋㅋ 계속 따라 웃고 있었다ㅋㅋㅋ

묘하게 이상한 데서 빵빵 터지는 관객분들 덕분에 좀 묘하게 계속 분위기가 밝아서 좀 수상하긴 했지만ㅋㅋㅋ 그래도 너무 좋았다.
화이팅, 화이팅//



그냥 장면만 가져올 셈이었는데, 장면보다 더 길고 길고 긴 베너 포스터구나.





옛날에, 어떤 연극평론집을 읽다가 기억에 남은 구절이 있다. 확실한 단어와 어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맥락이었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극본을 쓰는 게 아니라, 신춘문예로 등단된 사람들이 연극의 극본을 쓰고, 갑자기 인정받는 작가가 된다.
우리나라의 이런 시스템이 연극을 재미없게 만들고, 사람들이 굳이 영화보다 더 비싼 돈을 내면서 연극을 보려고 들지 않는 까닭이다.

글쎄,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좀 옛날의 아주 낡은 책이었으니 요즘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겠고...
그냥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이번이, 신춘문예 등단 작품의 연극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르고 있었더라면 굳이 의식하지 않고 봤을텐데, 의식하고 보니 괜히 평가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일단, 주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연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선명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고민되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 자연스러운 연기가 거기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방금 막 온 것 같은 풋풋한 청년과 부산사투리의 구사가 자연스러운 아가씨와, 메마른 웃음을 눈으로 보여주는 남자.
무슨 4D도 아니고 족발냄새를 맡으며 연극을 보긴 또 처음이여서, 정말 살아있는 연극이구나, 해서 좋았고, 근데 너무 냄새가ㅋㅋㅋㅋ

웃음의 포인트도 좋았고, 파키스탄 청년의 억양도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가야금 반주가 너무 좋았다.
가야금 합주같은 건 여러번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지만, 그 때도 이렇게까지 선명한 소리를 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소품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인데도 단아하게 조용히 의자에서 걸어나와 연주하시는 가야금 소리가 너무 좋았다.

연극이 끝나고 시계를 보고,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1시간짜리 연극이었다.
좋았던 점들은 충분히 언급했으니 이제 아쉬운 점을 말해보자면,
연극은 좋았지만, 1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파키스탄에서 온 불법체류 노동자와 사장의 갈등이 어떻게 해결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아가씨,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까. 웃음을 주는 존재로써, 연극 전체에 아무런 역할도 없이 그냥 장단을 맞춰주는 구실로써, 라디오 같은 소품으로 쓰였을 뿐이다. 확실히 연기는 정말 좋았지만, 그 아가씨의 배역은 도대체 뭘 위해서 존재하는 건지 나는 연극이 끝날 때까지 알 수가 없었다. 

좀 더 길었어야 했다.
파키스탄 청년이 협박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사장의 유혹에 넘어가건 그렇지 않건,
사장이 울다 지쳐 쓰러져 잠들 것이 아니라 어떤 식이든 갈등의 고조 후에 해결이 났어야 했다.



연극이 끝나고 모두들 박수를 치는데,
나는 연극이 정말 끝난건지를 알 수 없어서, 배우들이 인사할때까지 멍하니 있었다.
정말 그런 데서 끝낼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끝난 거더라.

이런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풀어낼 수 있다니, 너무 좋았고, 연기도 너무 좋았지만,,
뭐라고 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남아있다. 



내가 덜 받아들인걸까.
작가가 덜 준걸까.

잘 모르겠다. 
분명,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선가, 아니면 모의고사 지문에선가, 접한 적 있는 작품이었다.
당시엔 깔깔거리고 웃고 넘길 정도로 아주 가볍고 어이없는 사랑이야기였는데,
왜 이렇게까지 와닿을까.

아주는 아니지만 조금 삐그덕 거리는 부분이 보였지만, 정말 조금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연출 하나하나가 좋았다.
고심이 들어가 있었다.

무언가에 마음으 쏠려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심생이라 한다고 한다. 心生.

일단 그 출발이 된 소설의 본문은, 기니까 첨부하되 접는다.




프린지 페스티벌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작품도 이미 공연되었던 적이 있는 작품을 다시 소극장 무대에 세운 것이다.
고작 3일을 무대에 올려, 100명 남짓한 관객을 위해, 이 모든 것을 다시 연습하고, 새로운 사람을 오디션한다니,,,
연극이란 참 열정의 산물이고, 점점 헤어날 수가 없다.


포스터도 그 때의 포스터를 가져왔다.






연극을 딱 다 보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은 참 할 말이 많았는데, 막상 키보드 앞에 앉으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극단에서 배부되는 팜플릿에 적혀있는 내용을 옮긴다면,,
->우연히 조선시대 문인이었던 '이옥'이라는 작가의 글들을 접함->정조대왕의 '문체반정'정책에 관심.
->당시의 남인/노론의 정치적인 대립을 잠재우기 위해 정조대왕이 내세운 '문체반정'정책은 다름 아닌 왕권강화를 위한 일방적인 정책은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을 낳았다.
->나아가 70-80년대 금지곡들의 자유도 노래코자 했다.

그리고, 스토리를 발췌해오자면,
주인공 남공철이 아버지가 태워버리라고 한 책을 호기심에 읽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책은 당시 정조의 문체반정에 따라 금지됐던 소설문체로 쓰인 책이다. 남공철은 유생들에게 그 책의 내용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유생들에게 그 책이 읽혀지고 있다는 것을 안 정조는 그 책을 쓴 자를 찾아내 벌을 주려 한다. 그러나 그 책은 정조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시사저널21발췌)






그리고, 다음은 그냥 내 자투리 감탄들.

1.두 개의 공간과 시간이 하나의 무대의 하나의 부분에 겹쳐져 인물마저 섞여있는데도 그게 자연스럽고 헷갈리지 않으며, 인물끼리 알아차리지 못한다.

2.아 북소리 레알 사랑스러움. 두두두두두두두 할때.

3.출입경로가 3개인 것도 좋았다. 계단도 좋았고, 관객의 코앞으로 쏙 빠져나가는 것도 좋았다.

4.의자는 참 연극마다 유용한 소품인 것 같다. 연극의 고전적 소품이겠지. 여기서의 의자는 (내 해석이 옳으리란 법은 없지만) 욕망이자 지위이자,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선뜻 건낼 수 있는 무언가의 권력의 상징이다. 또한 자존심이기도 하고.

5.신문지로 더덕더덕한 바닥을 보고, 퍼블릭아이처럼 안과 밖을 구분짓는 경계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른 소극장보다 기둥도 없고 경계가 불분명하고 깊이? 세로길이? 가 깊은 그 곳에 진행경로를 만들고, 또, 건물 안팎을 나타내기도 했고.

6.신문지로 만든 의상은 정말,,, 으악 소리가 나올만큼 좋았다. 그냥 내가 문외한이라서 이걸 기발하다고 느끼는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왕에게 신문지로 만든 의상을 입혀주는 순간까지의 그 모든 전개에서, 그렇게까지 빛을 발하는 소품이 또 있을 수 있을까.

7.이건 좀 초콜릿코스모스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내용에서 독립된 '연극도구'의 소녀가 한 명 등장한다. 처음에는 소설 중 내용에서만 나오더니, 후에는 계속 빼꼼히 맴돌며 슬퍼한다. 연극을 볼 때는 그 소녀가 '연극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이거 초콜릿코스모스를 보고 쓴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그 소녀가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기뻐하고 명랑하지만, 보통 그녀는 숨고, 맴돌고, 거절당한다. 글쎄, 내 망상이다 이건 ㅋㅋㅋㅋ 나도안다ㅋ 근데 너무 헤맑고, 예쁘고, 선명하고, 눈에 튀었다. 허리가 올곧아 그런지 어느 구석에 있어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냥 반했다ㅋㅋㅋㅋㅋ

8.왕이 독자의 주체가 되고, 그 시점에서 심생에 감정이입하는 걸, 연극적으로 너무 잘 표현했다. 그래, 그냥 주인공이 되면 되는 거다. 극 중 주인공이 소설 속 주인공도 되고, 이 얼마나 편리한가.

9.같이 본 모두가 반론을 제기했다면, 실제로 그 '정조가 작가'설은 억지여도 너무 억지였던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도 난 헤벌레ㅋㅋㅋㅋㅋ 정조의 세자시절을 연기한 소녀의 모습도 너무 '세자'다웠고, 그리고 세자가 정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책'을 넘겨주는 것에서 목에 맨 밧줄을 넘겨주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치환되는 그 장면에서... 아 레알 할말잃음... 뭐... 이걸 누가 어떻게 쓴겈ㅋㅋㅋㅋㅋ

10.유머욕심도 있어서 현대적인 것들을 지나치지 않을만큼 열심히 넣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좀 늘어지면서 유머가 사라지긴 했지만, 책이 등이라는 설정과, 그 등을 이고 나가게 해서, 등이 죽음을 암시하게 하는 것까지.



참 칭찬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해야 속이 시원한 걸 보면,
천상 문과인건가ㅋㅋㅋ

너무 좋았다.
참쌀떠어어어~억! 과 어울리는 아메리카노~~~ 의 발성에도 반했다 ㅋㅋㅋㅋㅋ
10년째 찹쌀떡을 판 것도 아니고 목소리는 왜 그렇게 뚜렷하고 선명하고 좋니.

그냥 남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아쉬움은,
하나, 그 엎드려 절하던 아빠는 목매달려 죽었는데, 그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둘, 자기가 그 글을 쓴 거라고 상기하게 되는 계기가 좀 어정쩡했던 것 같다. 왕이 좀ㅋㅋㅋㅋ
셋, 원래 소설의 본문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 같긴 한데, 여자가 죽었다는 걸 나타내는 장면은 너무 좀 산만했던 것 같다.
저기선 왕인지 심생인지가 읊조리고 여기선 그녀가 읊조리고 저기선 흐느끼는 무리가 나가고.



아 몰라 다 좋았다ㅋㅋㅋ
의자에 앉아서 자는 연기까지 혼이 나갈만큼 좋았다ㅋㅋㅋ
프린지페스티벌 만세!!!!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보는 두 번째 연극이다.
<사랑이 올까요>
음악극이라기에 어떤 형태일지 기대가 컸다.

사실 거의 모든 글이 그렇지 않을까 싶지만,
이러이러한 설정은 재밌겠다는 한 장면에 대한 착상에서 출발하잖아.
그런데 그 한 장면을 죽 잡아당겨 한시간 분량으로 만들면 보는 입장에서 좀 곤란하다 ㅋㅋㅋ

이 연극은 그런 느낌이었다.
음악 자체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한데,
피아노 반주는 그나마 나았지만, 기타 반주는 목소리가 묻혀서 가사를 못알아들었을 뿐이고.

드라마는 한 장면 한 장면의 호흡이 빨라도 따라가기 쉽고,
소설도 흐름이 끊기긴 하지만 그럴 수 있을 테지만,
연극에 그렇게 불을 껐다 켰다 하는 건 좀 에러일지도.
순서를 좀 더 차분히 전개해도 괜찮았을 텐데, 아쉽다.

세 분다 연기는 좋았고, 지석역 분의 목소리는 잘 울려서 좋았다.



이렇게 포스터 보면서 빵빵 터져도 괜찮은 걸까 싶을 정도로 빵빵 ㅋㅋㅋㅋ
"그렇게 자신이 없나?"와 "그 사람이... 나라고요?"는 대사를 바꿔서 잘못 인쇄한 것 같다 ㅋㅋㅋㅋ

근데 아직도 왜 저 둘이 이름이 다른건지 모르겠을 뿐이고 ㅋㅋㅋㅋ
세상엔 닮은 사람이 셋 있다더니 설마 둘은 타인이라는 설정인갘ㅋㅋㅋㅋㅋ
근데 여자의 눈엔 '이다'가 안보였잖아 ㅋㅋㅋㅋㅋ 과거의 인물인거잖앜ㅋㅋㅋㅋㅋㅋ왜 근데 이름이 다름요ㅋㅋㅋㅋㅋㅋㅋ
좀 여럿의 설정을 한 군데 모아놓은 것 같은 느낌.. 한 사람이 쓴 거라면 정말 묘한거다ㅋㅋㅋㅋㅋㅋㅋ

그리 나쁘진 않았던 것 같은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을 수가 없다. 

소극장이 너무 구석에 처박혀 있고 입간판도 없어서, 찾느라 고생했다.
다시 내려가다가 찾느라 고생하는 중인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느라 잘난척한 건 자랑. 그러다가 택시에 치일뻔한건 안자랑.

"사람들이 입을 닫고 귀를 열고
서로의 심장 고동소리를 들을 수 만 있다면..."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본 첫번째 연극이다.

연극은 검색을 해서도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 때 그 때 감상을 남겨야지. 하고 생각한다.
요즘,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꼭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만 할 필욘 없다는 걸 느끼게 해준 연극이었다.

처음엔 좀 뜬금없다고 생각했던, 외침.
어른들에 의해서만 주어질 수 있고, 꽃이 시들었으니 물을 주어야 겠고, 이런 한 분의 대사는 기억이 안난다ㅋㅋㅋ
어쨋든 그 대사들의 활용이 너무 좋았고,
같은 장면의 재활용도 너무 좋았고, 
시간 순서가 바뀌는 것도 흐름이 뚝뚝 끊기지 않았고,
칠판을 활용해서 대놓고 적어주는 것도, 정말 똑똑했다. 


사진들은 지금의 축제 참여 때의 포스터가 아니라, 옛날 퍼블릭 아이 3월 공연때의 포스터와 사진들을 가져온 것이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거슬리도록 들렸으니, 이번의 사진도 뒤져보면 찾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문제가 제기되고, 고조되고, 해결법이 제시되는 그 정석적인 구조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
흐지부지하게 흐리지 않고 부딪히는 것도 좋았고, 세 분 다 연기가 너무 쩔었다 ㅋㅋㅋㅋㅋ

대화의 단절은 침묵으로,
반어적이지만 작가가 찾아낸 해답을 향해 가는 거라면, 어떤 답이든 좋다. 

소품도, 무대활용도, 세워놓은 책들의 의미도, 관객을 활용하는 방법도 다 좋았다.
칭찬일색일만큼 좋았다.

결과를 내놓는 게 제3자의 역할이라는 것과, 
그 결과를 따라 5초만에 문제가 해결되는 게 좀 미심쩍고 아쉬웠지만,
모자와/동상과/액자와/책과/칠판과/무엇하나 버릴 것 없는 무대소품에 반했다 ㅋㅋㅋㅋ
아 좋았다.' ㅡ'-333

 



역시 원작이 따로 있는 연극들은 무게감 있달까,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축복받을 축제다!!




와우북축제 때부터 생각한건데,
예전엔 뭔가 축제 같은 걸 해도 이걸 도대체 왜한건가 싶을 정도로 기획의도 불분명+참가단체 불분명+참가욕구 뇨뇨 였는데,,
요즘엔 좀 후원도 후원답게 하고, 개최측도 참여측도 관람측도 확실히 이익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머리를 쓸 줄 안다.
으으 좋다.

그냥 연극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다ㅋㅋㅋㅋ

좀 참느라 힘들기도 하지만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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