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선가, 아니면 모의고사 지문에선가, 접한 적 있는 작품이었다.
당시엔 깔깔거리고 웃고 넘길 정도로 아주 가볍고 어이없는 사랑이야기였는데,
왜 이렇게까지 와닿을까.

아주는 아니지만 조금 삐그덕 거리는 부분이 보였지만, 정말 조금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연출 하나하나가 좋았다.
고심이 들어가 있었다.

무언가에 마음으 쏠려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심생이라 한다고 한다. 心生.

일단 그 출발이 된 소설의 본문은, 기니까 첨부하되 접는다.




프린지 페스티벌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작품도 이미 공연되었던 적이 있는 작품을 다시 소극장 무대에 세운 것이다.
고작 3일을 무대에 올려, 100명 남짓한 관객을 위해, 이 모든 것을 다시 연습하고, 새로운 사람을 오디션한다니,,,
연극이란 참 열정의 산물이고, 점점 헤어날 수가 없다.


포스터도 그 때의 포스터를 가져왔다.






연극을 딱 다 보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은 참 할 말이 많았는데, 막상 키보드 앞에 앉으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극단에서 배부되는 팜플릿에 적혀있는 내용을 옮긴다면,,
->우연히 조선시대 문인이었던 '이옥'이라는 작가의 글들을 접함->정조대왕의 '문체반정'정책에 관심.
->당시의 남인/노론의 정치적인 대립을 잠재우기 위해 정조대왕이 내세운 '문체반정'정책은 다름 아닌 왕권강화를 위한 일방적인 정책은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을 낳았다.
->나아가 70-80년대 금지곡들의 자유도 노래코자 했다.

그리고, 스토리를 발췌해오자면,
주인공 남공철이 아버지가 태워버리라고 한 책을 호기심에 읽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책은 당시 정조의 문체반정에 따라 금지됐던 소설문체로 쓰인 책이다. 남공철은 유생들에게 그 책의 내용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유생들에게 그 책이 읽혀지고 있다는 것을 안 정조는 그 책을 쓴 자를 찾아내 벌을 주려 한다. 그러나 그 책은 정조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시사저널21발췌)






그리고, 다음은 그냥 내 자투리 감탄들.

1.두 개의 공간과 시간이 하나의 무대의 하나의 부분에 겹쳐져 인물마저 섞여있는데도 그게 자연스럽고 헷갈리지 않으며, 인물끼리 알아차리지 못한다.

2.아 북소리 레알 사랑스러움. 두두두두두두두 할때.

3.출입경로가 3개인 것도 좋았다. 계단도 좋았고, 관객의 코앞으로 쏙 빠져나가는 것도 좋았다.

4.의자는 참 연극마다 유용한 소품인 것 같다. 연극의 고전적 소품이겠지. 여기서의 의자는 (내 해석이 옳으리란 법은 없지만) 욕망이자 지위이자,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선뜻 건낼 수 있는 무언가의 권력의 상징이다. 또한 자존심이기도 하고.

5.신문지로 더덕더덕한 바닥을 보고, 퍼블릭아이처럼 안과 밖을 구분짓는 경계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른 소극장보다 기둥도 없고 경계가 불분명하고 깊이? 세로길이? 가 깊은 그 곳에 진행경로를 만들고, 또, 건물 안팎을 나타내기도 했고.

6.신문지로 만든 의상은 정말,,, 으악 소리가 나올만큼 좋았다. 그냥 내가 문외한이라서 이걸 기발하다고 느끼는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왕에게 신문지로 만든 의상을 입혀주는 순간까지의 그 모든 전개에서, 그렇게까지 빛을 발하는 소품이 또 있을 수 있을까.

7.이건 좀 초콜릿코스모스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내용에서 독립된 '연극도구'의 소녀가 한 명 등장한다. 처음에는 소설 중 내용에서만 나오더니, 후에는 계속 빼꼼히 맴돌며 슬퍼한다. 연극을 볼 때는 그 소녀가 '연극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이거 초콜릿코스모스를 보고 쓴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그 소녀가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기뻐하고 명랑하지만, 보통 그녀는 숨고, 맴돌고, 거절당한다. 글쎄, 내 망상이다 이건 ㅋㅋㅋㅋ 나도안다ㅋ 근데 너무 헤맑고, 예쁘고, 선명하고, 눈에 튀었다. 허리가 올곧아 그런지 어느 구석에 있어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냥 반했다ㅋㅋㅋㅋㅋ

8.왕이 독자의 주체가 되고, 그 시점에서 심생에 감정이입하는 걸, 연극적으로 너무 잘 표현했다. 그래, 그냥 주인공이 되면 되는 거다. 극 중 주인공이 소설 속 주인공도 되고, 이 얼마나 편리한가.

9.같이 본 모두가 반론을 제기했다면, 실제로 그 '정조가 작가'설은 억지여도 너무 억지였던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도 난 헤벌레ㅋㅋㅋㅋㅋ 정조의 세자시절을 연기한 소녀의 모습도 너무 '세자'다웠고, 그리고 세자가 정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책'을 넘겨주는 것에서 목에 맨 밧줄을 넘겨주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치환되는 그 장면에서... 아 레알 할말잃음... 뭐... 이걸 누가 어떻게 쓴겈ㅋㅋㅋㅋㅋ

10.유머욕심도 있어서 현대적인 것들을 지나치지 않을만큼 열심히 넣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좀 늘어지면서 유머가 사라지긴 했지만, 책이 등이라는 설정과, 그 등을 이고 나가게 해서, 등이 죽음을 암시하게 하는 것까지.



참 칭찬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해야 속이 시원한 걸 보면,
천상 문과인건가ㅋㅋㅋ

너무 좋았다.
참쌀떠어어어~억! 과 어울리는 아메리카노~~~ 의 발성에도 반했다 ㅋㅋㅋㅋㅋ
10년째 찹쌀떡을 판 것도 아니고 목소리는 왜 그렇게 뚜렷하고 선명하고 좋니.

그냥 남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아쉬움은,
하나, 그 엎드려 절하던 아빠는 목매달려 죽었는데, 그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둘, 자기가 그 글을 쓴 거라고 상기하게 되는 계기가 좀 어정쩡했던 것 같다. 왕이 좀ㅋㅋㅋㅋ
셋, 원래 소설의 본문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 같긴 한데, 여자가 죽었다는 걸 나타내는 장면은 너무 좀 산만했던 것 같다.
저기선 왕인지 심생인지가 읊조리고 여기선 그녀가 읊조리고 저기선 흐느끼는 무리가 나가고.



아 몰라 다 좋았다ㅋㅋㅋ
의자에 앉아서 자는 연기까지 혼이 나갈만큼 좋았다ㅋㅋㅋ
프린지페스티벌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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