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책 등이 너무 예쁜 책이다.
책이 굵기가 꽤 되니까 할 수 있는 디자인이겠지만, 책 표지보다 책 등이 열 배는 더 마음에 든다.

원래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지 못한 책은 리뷰를 쓰지 않지만,
절대로 끝까지 읽을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서서, 그냥 쓴다.



일단 조금 종교적이다. 주인공의 동생만이 종교적이지만 꽤 종교적인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종교를 강압하는 이야기는 아니어서 거슬리진 않았지만, 의외로 종교적이었다.

문장은 좋다. 이야기를 잘한다. 스토리도 좋다. 인물들도 다 살아 있다.
근데 인물이 너무 많다. 이름도 다 비슷하다. 내 기억력을 시험한다.

1974년 8월 7일, 필리프 프티가 세계무역센터 빌딩들 사이를 줄타기 한 사건이 중심 소재다. 그런데 어쩐지 그냥 그건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취급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좋은 문장과 좋은 이야기인 건 알겠는데,, 좀 지루하고 따분해서 끝까지 못 읽겠다.



좋은 문장을 쓸 줄 안다는 건 문장을 매력있게 조합할 수 있다는 이야기라서, 
소제목도 한결같이 매력적이고, 제목까지 매력적이다. 

몇 가지 소제목만 나열해 본다.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천국이 싫다는 것이 아니라 이곳이 좋습니다.'
'거대한 지구를 영원히 돌게 하자.'
'이건 그 말이 지은 집이다.'



p.55
"두려움 조각들이 사방에 떠다녀." 그가 말했다. "그건 먼지 같아. (중략) 먼지는 분명 거기 있고 사방에서 내려와 모든 걸 덮어버리지. 우리는 먼지를 숨 쉬고 먼지를 만지고 먼지를 마시고 먼지를 먹어. 하지만 너무나도 작기에 우리가 알아보질 못하는 거야. (중략)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거야. 잠시 그대로 서 있으면 바로 거기 있어, 이 두려움이, 우리의 얼굴과 혀를 뒤덮으며 말이지. 우리가 멈춰서서 이 두려움을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절망에 빠져버리게 될 거야. 하지만 우리는 멈춰 설 수 없어. 우리는 계속 가야만 해."

p.63
그녀는 후두암으로 목소리의 대부분을 잃었다.

p.72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진짜로 예수의 살아 있는 이미지라면 왜 그들이 저렇게 빌어먹게 비참한 건데? 말해 보라고, 코리건. 왜 저들이 저렇게 거리에 서서 자기들의 불행을 다른 세상 사람들 앞에서 다 보여 주고 있는 건데?

p.78
나는 대학 시절 언젠가 들었던 신화가 떠올랐다. 세상에는 서른여섯 명의 성자가 숨어 있는데 그들은 모두 보잘것없는 사람들, 목수, 구두장이, 양치기의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들은 지상의 슬픔을 견뎌내고 있지만 모두 하느님과 소통하는 통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어느 숨겨진 성자는 잊혀졌다. 그 잊혀진 성자는 홀로 남겨져 그가 너무나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소통의 통로를 가지지 못한 채 힘겹게 싸우고 있다. (중략) 동생은 홀로 슬픔을, 이야기들의 이야기를 견뎌내고 있었다.

p.301
"혹시 뉴욕 다운타운 근처에 계십니까, 선생님?"
"누구세요?"
"혹 우리를 위해 위를 쳐다봐 주실 수 있나 해서요?"

p.411
그냥 거기 서서, 정확하게 줄의 중간 지점, 양쪽 타워로부터 100피트 되는 그곳에 서서 눈을 감고 몸을 정지하자 줄이 사라졌다.
(중략)
그는 그가 오직 첫 발걸음에 대해서만 생각했었다는 것을, 마지막 발걸음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략)
그 후 몇 년 동안 그는 여전히 그 위 그곳에 있을 것이다. 슬리퍼를 신고, 검은 발로, 민첩하게. 문득문득 그럴 것이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또는 폭풍이 오기 전 판자로 오두막 창문에 덧물을 대다가, 톤태나의 줄어들고 있는 초원 그 키 큰 풀밭 안에서 걷고 있다가, 또다시 공중에 있을 것이다. 발가락 사이로 팽팽한 케이블 줄을 느끼며, 바람과 서로 가로질러 엮이며, 불현듯 느끼는 높이감. 그의 아래로 펼펴지는 도시. 그의 기분이 어떻든, 어느 곳에 있든, 뜻밖의 순간에, 그것은 되돌아올 것이다. 
 




이건 좀 무섭다.
좋은 문장과 좋은 이야기가 있는데도 재밌지 않다니.  
 
내가 추천받은 책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 주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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