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연극을 두 번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저번에 이 연극을 봤을 때 남겼던 감상을 지금 다시 읽었다.
아주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봐서 더 좋았을테고, 내가 그 동안 무대예술에 많이 익숙하지 않아서 더 좋았을터였다.
처음 연극을 봤을 때 정말 신선했고, 정말 충격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그 때 느꼈던 '좋음'이, 그냥 새로운 것에서 오는 충격이었을까 하는 의문에 다시 같은 연극을 보러 갔다.
2달 만이다.

그리고 다시 놀라고 다시 또 좋았다.
프린지 페스티벌 기간 중 그렇게 관객석이 비좁도록 사람이 들어차는 것도, 통로까지 채우는 것도 처음 봤다.
아무래도 이틀 올라가는 연극인데, 첫째날의 입소문이 타서 둘째날에 사람이 몰린 탓이겠지.

< 이하 사진의 출처 = 양손프로젝트 http://blog.naver.com/yangsonp>



일단 처음 느낀 건, 아무래도 저번과 이번 무대의 차이점들.
산울림 소극장에서 고작 몇 발짝 떨어진 포스트 극장인데도 무대가 주는 크기와 깊이와 기둥의 유무의 아주 사소한 차이와.. 돈주머니가 떨어지느냐 던져지느냐의 사소한 차이들. 분명 배경음악도 달라진 것 같은데 그렇게 잘 기억이 나지 않으니 패스. 

이런 사소한 것들은 넘어가고, 
연극의 얘기를 해보자.

관객이 많고 적고, 웅성거리고, 조명이 너무 어두워지지 않는데서 조금 차이는 있었던 것 같지만,
산울림 소극장에서 봤을 땐 음악이 사그라들고, 조명이 꺼지고, 흰 옷의 남자가 등장하는 게 너무 좋았다.
아주 깜깜해서 아무것도 사위가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데 하얀 색은 눈에 보이니까, 그 흰색에 모두가 주목하게 되는 게 너무 좋았다. 
종이 만 것을 휘둘러 소리를 내는 것도 긴장감을 줘서 좋았다.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가진 채, 시작 전 어두울 때 나는 소리들은 다 너무 기분 좋은 긴장이 된다.

스토리 자체는 연극의 스토리라기보다 다자이 오사무의 글에 대한 이야기가 될 테다. 
그래서 스토리의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황금풍경>은 일인다역의 소화가 너무 좋았고, 양말을 벗는 능청스러움이 너무 좋았지만, 여자배우님의 노랫소리가 들려올 때 허무함을 느껴야 하는 게 좀 곤란했다. 연극으로 채택하기엔 묘사하는 재미가 있지만, 어쩐지 시작과 끝이 없는 이야기라는 느낌. 
그것과는 별개로 여자배우님의 독백같은 그 노래랄까 허밍이랄까, 순수한 느낌이 너무 와닿았다.




<개는 맹수다>는 여러모로 너무 좋았다. 녹아있는 고민들과 표현방식도 너무 좋았다. 해설자와 등장인물, 인간과 개의 경계 없이 편한데로 연기하는 그 모든 치열함이 너무 좋았다. 태클을 걸 것도 없이 너무 좋았다. 두 배우의 시선이 어느 한 지점에 맞닿아 있을 땐, 정말 거기 포치가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배우가 같은 동작을, 서로 시선을 전혀 교환하지 않는 게 보이는데도, 같은 포즈로 같은 동작을 하는 그 것들이 너무 좋았다. 아 진짜 다 좋았다. 단편이라서 있을 수 있는 얘기라는 건 알지만, 이걸 어떻게 1시간 20분으로 늘일 수 있다면, 이것만으로 하나의 연극이어도 좋았을지 모르겠다.




<직소>는,, 솔직히 좀 거북했다. 단순히 내게 종교적인 이야기는 죄 거북하다. 그래도 찬양하거나 비하하는 어느쪽의 극단으로도 가지 않고, 그냥 '한 사람'의 이야기라서 괜찮았다. 풀어내는 방식 자체는 좋았다. 의자를 똑바로 쌓아올렸다가 다시 무너뜨려 엇비슷하게 쌓아올리는 방식도 좋았고, 의자를 넘어뜨리는 모든 장면이 좋았다.
처음엔 남자배우 한 분은 탐욕이거나 단순한 악(惡)의 유다를, 그리고 여자배우분은 선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사랑하는 자의 유다를, 그리고 또 다른 남자배우분은 사랑이 도를 넘어 집착하게된 소유욕의 유다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셋이 그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도 하고. 
그런데 뒤로 갈수록 잘 알수 없어졌다.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너무 지레짐작한 것 같기도 하고, 그 모든 유다가 뒤에 가서 후회와 절망과 비참함에 다 함께 빠져들어 뒤섞이고 구분되지 않는다는 설정인지도 모르겠고, 그냥 모르겠다ㅋㅋㅋ 두번을 봐도 모르면 그냥 모르는거다.



대본에 흔히 쓰는 (사이)라는 게 왜 중요한 건지를 알 것 같았다. 배우의 침묵은 바로 주목과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으으으 침묵마저 좋았다. 
나레이션을 하는 내내 한 배우분은 웃음을 계속 띄고 한 배우는 계속 무표정한 게 의도였는지 어쨋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 만면의 웃음이라니ㅋㅋㅋ 계속 따라 웃고 있었다ㅋㅋㅋ

묘하게 이상한 데서 빵빵 터지는 관객분들 덕분에 좀 묘하게 계속 분위기가 밝아서 좀 수상하긴 했지만ㅋㅋㅋ 그래도 너무 좋았다.
화이팅, 화이팅//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하여, 였던가 하는 노래제목을 상당히 좋아한다.
시작한다, 가 아니라 시작된다, 라서 그렇다.

시작한다, 는 지금부터 미래를 바라보는 느낌이고,
시작된다, 는 과거에서 예정한 일들이 지금 시작되는 느낌이라서 그렇다.
굳이 말하자면 운명론 나부랭이.



1:1의 감정소모라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보면 1:1의 감정소모였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1:多 이거나 多:多의 감정소모다.

사랑얘기를 쓰려고 여러가지로 계속 생각을 해 봤는데,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사귈텐지 상상하는것만으로도 지쳐서 안되겠다.
지금은 뭘 쓰려고 들어도 살인마가 등장하거나 전쟁을 하거나 경찰서가 튀어나오고 결국 풋풋함과 거리가 멀어진다. 에라이.

그런 걸 각오하라니, 도대체가 소모하고 소모해서 남아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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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장면만 가져올 셈이었는데, 장면보다 더 길고 길고 긴 베너 포스터구나.





옛날에, 어떤 연극평론집을 읽다가 기억에 남은 구절이 있다. 확실한 단어와 어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맥락이었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극본을 쓰는 게 아니라, 신춘문예로 등단된 사람들이 연극의 극본을 쓰고, 갑자기 인정받는 작가가 된다.
우리나라의 이런 시스템이 연극을 재미없게 만들고, 사람들이 굳이 영화보다 더 비싼 돈을 내면서 연극을 보려고 들지 않는 까닭이다.

글쎄,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좀 옛날의 아주 낡은 책이었으니 요즘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겠고...
그냥 갑자기 그 생각이 났다.

이번이, 신춘문예 등단 작품의 연극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르고 있었더라면 굳이 의식하지 않고 봤을텐데, 의식하고 보니 괜히 평가하는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일단, 주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연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선명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고민되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 자연스러운 연기가 거기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방금 막 온 것 같은 풋풋한 청년과 부산사투리의 구사가 자연스러운 아가씨와, 메마른 웃음을 눈으로 보여주는 남자.
무슨 4D도 아니고 족발냄새를 맡으며 연극을 보긴 또 처음이여서, 정말 살아있는 연극이구나, 해서 좋았고, 근데 너무 냄새가ㅋㅋㅋㅋ

웃음의 포인트도 좋았고, 파키스탄 청년의 억양도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가야금 반주가 너무 좋았다.
가야금 합주같은 건 여러번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지만, 그 때도 이렇게까지 선명한 소리를 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소품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인데도 단아하게 조용히 의자에서 걸어나와 연주하시는 가야금 소리가 너무 좋았다.

연극이 끝나고 시계를 보고,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1시간짜리 연극이었다.
좋았던 점들은 충분히 언급했으니 이제 아쉬운 점을 말해보자면,
연극은 좋았지만, 1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파키스탄에서 온 불법체류 노동자와 사장의 갈등이 어떻게 해결될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아가씨,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까. 웃음을 주는 존재로써, 연극 전체에 아무런 역할도 없이 그냥 장단을 맞춰주는 구실로써, 라디오 같은 소품으로 쓰였을 뿐이다. 확실히 연기는 정말 좋았지만, 그 아가씨의 배역은 도대체 뭘 위해서 존재하는 건지 나는 연극이 끝날 때까지 알 수가 없었다. 

좀 더 길었어야 했다.
파키스탄 청년이 협박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사장의 유혹에 넘어가건 그렇지 않건,
사장이 울다 지쳐 쓰러져 잠들 것이 아니라 어떤 식이든 갈등의 고조 후에 해결이 났어야 했다.



연극이 끝나고 모두들 박수를 치는데,
나는 연극이 정말 끝난건지를 알 수 없어서, 배우들이 인사할때까지 멍하니 있었다.
정말 그런 데서 끝낼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끝난 거더라.

이런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풀어낼 수 있다니, 너무 좋았고, 연기도 너무 좋았지만,,
뭐라고 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남아있다. 



내가 덜 받아들인걸까.
작가가 덜 준걸까.

잘 모르겠다. 
지친다고 말했다. 저도 지친다고, 이젠 힘들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랜 시간을 망설인 것처럼, 이 시간도 아주 오래고 더딜 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대답을 하고, 계산을 하고, 언제나처럼 팔짱을 끼고, 문턱까지 나서는 길이 얼마나 짧은지 묘사할 단어를 찾을 시간도 없었다.

몇 번이고 나는 뒤를 돌아봤고, 그 때마다 뒤를 돌아 이 쪽을 보고 있는 그 사람이 있었다.
그게 늘 좋았다.
말하지 않아도, 눈치가 없어도, 내가 손을 내밀때 같이 내밀고, 내가 돌아볼 때 같이 돌아보는 게. 내가 배고플 때 같이 허기지다고 했고, 내가 입맞춰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그도 그렇게 생각했다. 재고 따지고 눈치보지 않아도 되서 좋았다.
그런데 그게 오늘에 와서는 불편해졌다.
말하지 않아도, 눈치 없는 그와 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서. 어느날 그는 힘들어했고, 나도 그랬다. 어느날 그는 슬프다고 말했고, 나도 그랬다. 어느날 그는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나도 그랬다. 그런데 한 달째 어쩔까 하고 고민하던 생각의 끝이 이 곳으로 걸음을 옮기게 했을 때, 그도 그랬던 거다.

나와 내가 연애를 할 수는 없다는 걸 좀 더 일찍 알아차렸어야 했다.
이제 남은 후회와 외로움과 그리움은 다 어쩔 것인가.

눈이 아파서 부비다가, 티끌이 들어갔는지 눈물이 나왔다. 
한 두 방울이 아니었다. 일그러지도록 펑펑 울었다.
울다 지쳐서 침대에 온 몸을 내동댕이 치고 막 잠들려는 그 순간, 그도 울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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