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선가, 아니면 모의고사 지문에선가, 접한 적 있는 작품이었다.
당시엔 깔깔거리고 웃고 넘길 정도로 아주 가볍고 어이없는 사랑이야기였는데,
왜 이렇게까지 와닿을까.

아주는 아니지만 조금 삐그덕 거리는 부분이 보였지만, 정말 조금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연출 하나하나가 좋았다.
고심이 들어가 있었다.

무언가에 마음으 쏠려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심생이라 한다고 한다. 心生.

일단 그 출발이 된 소설의 본문은, 기니까 첨부하되 접는다.




프린지 페스티벌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 작품도 이미 공연되었던 적이 있는 작품을 다시 소극장 무대에 세운 것이다.
고작 3일을 무대에 올려, 100명 남짓한 관객을 위해, 이 모든 것을 다시 연습하고, 새로운 사람을 오디션한다니,,,
연극이란 참 열정의 산물이고, 점점 헤어날 수가 없다.


포스터도 그 때의 포스터를 가져왔다.






연극을 딱 다 보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은 참 할 말이 많았는데, 막상 키보드 앞에 앉으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극단에서 배부되는 팜플릿에 적혀있는 내용을 옮긴다면,,
->우연히 조선시대 문인이었던 '이옥'이라는 작가의 글들을 접함->정조대왕의 '문체반정'정책에 관심.
->당시의 남인/노론의 정치적인 대립을 잠재우기 위해 정조대왕이 내세운 '문체반정'정책은 다름 아닌 왕권강화를 위한 일방적인 정책은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을 낳았다.
->나아가 70-80년대 금지곡들의 자유도 노래코자 했다.

그리고, 스토리를 발췌해오자면,
주인공 남공철이 아버지가 태워버리라고 한 책을 호기심에 읽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책은 당시 정조의 문체반정에 따라 금지됐던 소설문체로 쓰인 책이다. 남공철은 유생들에게 그 책의 내용을 알려주기 시작한다. 유생들에게 그 책이 읽혀지고 있다는 것을 안 정조는 그 책을 쓴 자를 찾아내 벌을 주려 한다. 그러나 그 책은 정조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시사저널21발췌)






그리고, 다음은 그냥 내 자투리 감탄들.

1.두 개의 공간과 시간이 하나의 무대의 하나의 부분에 겹쳐져 인물마저 섞여있는데도 그게 자연스럽고 헷갈리지 않으며, 인물끼리 알아차리지 못한다.

2.아 북소리 레알 사랑스러움. 두두두두두두두 할때.

3.출입경로가 3개인 것도 좋았다. 계단도 좋았고, 관객의 코앞으로 쏙 빠져나가는 것도 좋았다.

4.의자는 참 연극마다 유용한 소품인 것 같다. 연극의 고전적 소품이겠지. 여기서의 의자는 (내 해석이 옳으리란 법은 없지만) 욕망이자 지위이자,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선뜻 건낼 수 있는 무언가의 권력의 상징이다. 또한 자존심이기도 하고.

5.신문지로 더덕더덕한 바닥을 보고, 퍼블릭아이처럼 안과 밖을 구분짓는 경계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른 소극장보다 기둥도 없고 경계가 불분명하고 깊이? 세로길이? 가 깊은 그 곳에 진행경로를 만들고, 또, 건물 안팎을 나타내기도 했고.

6.신문지로 만든 의상은 정말,,, 으악 소리가 나올만큼 좋았다. 그냥 내가 문외한이라서 이걸 기발하다고 느끼는 걸 수도 있다.
그런데, 왕에게 신문지로 만든 의상을 입혀주는 순간까지의 그 모든 전개에서, 그렇게까지 빛을 발하는 소품이 또 있을 수 있을까.

7.이건 좀 초콜릿코스모스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내용에서 독립된 '연극도구'의 소녀가 한 명 등장한다. 처음에는 소설 중 내용에서만 나오더니, 후에는 계속 빼꼼히 맴돌며 슬퍼한다. 연극을 볼 때는 그 소녀가 '연극도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이거 초콜릿코스모스를 보고 쓴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그 소녀가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기뻐하고 명랑하지만, 보통 그녀는 숨고, 맴돌고, 거절당한다. 글쎄, 내 망상이다 이건 ㅋㅋㅋㅋ 나도안다ㅋ 근데 너무 헤맑고, 예쁘고, 선명하고, 눈에 튀었다. 허리가 올곧아 그런지 어느 구석에 있어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냥 반했다ㅋㅋㅋㅋㅋ

8.왕이 독자의 주체가 되고, 그 시점에서 심생에 감정이입하는 걸, 연극적으로 너무 잘 표현했다. 그래, 그냥 주인공이 되면 되는 거다. 극 중 주인공이 소설 속 주인공도 되고, 이 얼마나 편리한가.

9.같이 본 모두가 반론을 제기했다면, 실제로 그 '정조가 작가'설은 억지여도 너무 억지였던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도 난 헤벌레ㅋㅋㅋㅋㅋ 정조의 세자시절을 연기한 소녀의 모습도 너무 '세자'다웠고, 그리고 세자가 정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책'을 넘겨주는 것에서 목에 맨 밧줄을 넘겨주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치환되는 그 장면에서... 아 레알 할말잃음... 뭐... 이걸 누가 어떻게 쓴겈ㅋㅋㅋㅋㅋ

10.유머욕심도 있어서 현대적인 것들을 지나치지 않을만큼 열심히 넣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좀 늘어지면서 유머가 사라지긴 했지만, 책이 등이라는 설정과, 그 등을 이고 나가게 해서, 등이 죽음을 암시하게 하는 것까지.



참 칭찬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해야 속이 시원한 걸 보면,
천상 문과인건가ㅋㅋㅋ

너무 좋았다.
참쌀떠어어어~억! 과 어울리는 아메리카노~~~ 의 발성에도 반했다 ㅋㅋㅋㅋㅋ
10년째 찹쌀떡을 판 것도 아니고 목소리는 왜 그렇게 뚜렷하고 선명하고 좋니.

그냥 남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아쉬움은,
하나, 그 엎드려 절하던 아빠는 목매달려 죽었는데, 그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둘, 자기가 그 글을 쓴 거라고 상기하게 되는 계기가 좀 어정쩡했던 것 같다. 왕이 좀ㅋㅋㅋㅋ
셋, 원래 소설의 본문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 같긴 한데, 여자가 죽었다는 걸 나타내는 장면은 너무 좀 산만했던 것 같다.
저기선 왕인지 심생인지가 읊조리고 여기선 그녀가 읊조리고 저기선 흐느끼는 무리가 나가고.



아 몰라 다 좋았다ㅋㅋㅋ
의자에 앉아서 자는 연기까지 혼이 나갈만큼 좋았다ㅋㅋㅋ
프린지페스티벌 만세!!!!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보는 두 번째 연극이다.
<사랑이 올까요>
음악극이라기에 어떤 형태일지 기대가 컸다.

사실 거의 모든 글이 그렇지 않을까 싶지만,
이러이러한 설정은 재밌겠다는 한 장면에 대한 착상에서 출발하잖아.
그런데 그 한 장면을 죽 잡아당겨 한시간 분량으로 만들면 보는 입장에서 좀 곤란하다 ㅋㅋㅋ

이 연극은 그런 느낌이었다.
음악 자체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한데,
피아노 반주는 그나마 나았지만, 기타 반주는 목소리가 묻혀서 가사를 못알아들었을 뿐이고.

드라마는 한 장면 한 장면의 호흡이 빨라도 따라가기 쉽고,
소설도 흐름이 끊기긴 하지만 그럴 수 있을 테지만,
연극에 그렇게 불을 껐다 켰다 하는 건 좀 에러일지도.
순서를 좀 더 차분히 전개해도 괜찮았을 텐데, 아쉽다.

세 분다 연기는 좋았고, 지석역 분의 목소리는 잘 울려서 좋았다.



이렇게 포스터 보면서 빵빵 터져도 괜찮은 걸까 싶을 정도로 빵빵 ㅋㅋㅋㅋ
"그렇게 자신이 없나?"와 "그 사람이... 나라고요?"는 대사를 바꿔서 잘못 인쇄한 것 같다 ㅋㅋㅋㅋ

근데 아직도 왜 저 둘이 이름이 다른건지 모르겠을 뿐이고 ㅋㅋㅋㅋ
세상엔 닮은 사람이 셋 있다더니 설마 둘은 타인이라는 설정인갘ㅋㅋㅋㅋㅋ
근데 여자의 눈엔 '이다'가 안보였잖아 ㅋㅋㅋㅋㅋ 과거의 인물인거잖앜ㅋㅋㅋㅋㅋㅋ왜 근데 이름이 다름요ㅋㅋㅋㅋㅋㅋㅋ
좀 여럿의 설정을 한 군데 모아놓은 것 같은 느낌.. 한 사람이 쓴 거라면 정말 묘한거다ㅋㅋㅋㅋㅋㅋㅋ

그리 나쁘진 않았던 것 같은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을 수가 없다. 

소극장이 너무 구석에 처박혀 있고 입간판도 없어서, 찾느라 고생했다.
다시 내려가다가 찾느라 고생하는 중인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주느라 잘난척한 건 자랑. 그러다가 택시에 치일뻔한건 안자랑.

"사람들이 입을 닫고 귀를 열고
서로의 심장 고동소리를 들을 수 만 있다면..."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본 첫번째 연극이다.

연극은 검색을 해서도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 때 그 때 감상을 남겨야지. 하고 생각한다.
요즘,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꼭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만 할 필욘 없다는 걸 느끼게 해준 연극이었다.

처음엔 좀 뜬금없다고 생각했던, 외침.
어른들에 의해서만 주어질 수 있고, 꽃이 시들었으니 물을 주어야 겠고, 이런 한 분의 대사는 기억이 안난다ㅋㅋㅋ
어쨋든 그 대사들의 활용이 너무 좋았고,
같은 장면의 재활용도 너무 좋았고, 
시간 순서가 바뀌는 것도 흐름이 뚝뚝 끊기지 않았고,
칠판을 활용해서 대놓고 적어주는 것도, 정말 똑똑했다. 


사진들은 지금의 축제 참여 때의 포스터가 아니라, 옛날 퍼블릭 아이 3월 공연때의 포스터와 사진들을 가져온 것이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거슬리도록 들렸으니, 이번의 사진도 뒤져보면 찾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문제가 제기되고, 고조되고, 해결법이 제시되는 그 정석적인 구조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
흐지부지하게 흐리지 않고 부딪히는 것도 좋았고, 세 분 다 연기가 너무 쩔었다 ㅋㅋㅋㅋㅋ

대화의 단절은 침묵으로,
반어적이지만 작가가 찾아낸 해답을 향해 가는 거라면, 어떤 답이든 좋다. 

소품도, 무대활용도, 세워놓은 책들의 의미도, 관객을 활용하는 방법도 다 좋았다.
칭찬일색일만큼 좋았다.

결과를 내놓는 게 제3자의 역할이라는 것과, 
그 결과를 따라 5초만에 문제가 해결되는 게 좀 미심쩍고 아쉬웠지만,
모자와/동상과/액자와/책과/칠판과/무엇하나 버릴 것 없는 무대소품에 반했다 ㅋㅋㅋㅋ
아 좋았다.' ㅡ'-333

 



역시 원작이 따로 있는 연극들은 무게감 있달까,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축복받을 축제다!!




와우북축제 때부터 생각한건데,
예전엔 뭔가 축제 같은 걸 해도 이걸 도대체 왜한건가 싶을 정도로 기획의도 불분명+참가단체 불분명+참가욕구 뇨뇨 였는데,,
요즘엔 좀 후원도 후원답게 하고, 개최측도 참여측도 관람측도 확실히 이익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머리를 쓸 줄 안다.
으으 좋다.

그냥 연극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다ㅋㅋㅋㅋ

좀 참느라 힘들기도 하지만ㅋㅋㅋㅋ 
생각보다 두껍기도 하고, 주말에 이런저런 일이 겹쳐서 책을 못 읽게 되어, 다직도 절반을 조금 넘긴 곳을 읽고 있다.



p.164
대여섯 명이 옹기종기 서투르게 서서 기다리는 것이 남들에게는 초라했겠지만 내게는 더없이화려해 보였다. 많이 나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들 이름을 몰랐다. 다른 자리에서 또 만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죄인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변호사로서 국회의원으로서 늘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도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노사모는 30대 회사원이 많았고 학력도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었으며 사는 형편도 나쁘지 않았다. 자기네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 주었거나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를 지지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원칙, 진실, 정의, 그런 보편적 가치를 지지한 것이다.






노사모의 이야기를 할 때면 지면으로 보는데도 기쁨이 읽힌다.
나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희생하여 나를 지지해준다면, 부담만큼 기쁠 것이다.
나는 노무현을 잘 모른다.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자서전이니, 자기평가가 담긴 이 책 한 권을 가지고 어떻게 평가해 볼 수도 없다.
그래도 좀 더 일찍 알지 못한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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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은 믿지 않는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내 경험 속의 어떤 '말 잘 하는 사람'에게 크게 데인 적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말을 잘 하는 사람보다 좀 더 시간을 들여 자신을 정당화 할 줄 알 것이다.
그렇다면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믿지 않아야 할텐데, 어쩐지 글을 읽고 있으면 신뢰할 수 있는 진심이 와닿을 떄가 있다.



쓰는 소설의 주인공의 모티프로 삼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노무현의 빠였다.
나는 티비를 안본다. 그냥 고등학교때 공부하느라 11시에 집에 들어오고 6시에 나갔으니 볼 시간이 없었다가, 그 뒤로 보게 될 만한 계기가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건 세상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스스로도 알고 있다.
정치에 대해서, 연애인에 대해서, 그 모든 건 중요한 내 현실이 아니니까.

글을 쓰다가 캐릭터가 너무 죽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좀 더 현실에 붙여보자,고 생각했고, 노무현의 이야기가 끌어들이기 가장 수월해보였다.
나는 그 분의 임기 동안 단 한번 연설을 들어본 적도 없을만큼 무관심한 사람이지만, 이용할 수 있다면 나쁠 게 뭐가 있겠냐, 고 생각했다.
자서전을 두 권 빌렸다. 둘 다 정리하다 말고 돌아가셔서 출판사나 재단에서 편집한 본이었지만, 나에게 충분히 반성을 낳았다.

너무나 현실적이고,
너무나 비참하고,
내가 외면한 모든 게 거기 있었다.
두 페이지에 이름을 쓰고 버릴 수가 없다.

아직 절반도 읽지 못했는데,
픽션에 매몰되어 있던 내가 부끄러워 고개를 들수가 없다.

참, 치열하게 살았구나, 이 사람은.

자서전이라면 많이 읽었지만, 이렇게 자기미화를 하고, 다음 문장에 그걸 반성하고, 또 다음문장에 자기변명을 하고, 또 다음문장에 그걸 반성하는 이런 건 처음 읽었다.
이상이, 높은 게 아니라, 자기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게 보여서, ..








인간은 이상한 생물이라서,
눈 앞에 있는 물건을 똑같이 재구성하는 데 시간을 들이고, 그게 똑같으면 똑같을 수록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하고, 그것을 그리도 좋아한다.
눈 앞에 있는 물건을 그냥 보면, 그걸로 될 것을.

픽션에서 그렇게 감동과, 공감과, 현실을 찾아 헤맨 나는,
이제와서 그 모든 것이 논픽션에 있다는 당연함을 배웠다.
현실을 모방하려는 비현실보다야
현실이 더 현실적인게
당연한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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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님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딱 잘라, 내 취향은 아니었다.
처음엔 너무 무거워서 좀 읽기 힘들겠다고 생각했고, 소재가 문체보다 더 무겁기에 이건 좀 시간이 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넘어서서 글이 너무 근엄하다. 읽다읽다 지친다. 1/3정도 읽고 그냥 내려놓았다. 끝까지 다 읽을 재간이 없다.
문장 자체는 좋고, 아름답고, 예쁘다. 문장이 예쁜 것만 가지고 계속 읽을 수 없다는 게 단점이지만.
소재도 조금 뜬구름잡는 이야기였다. 끝에 가서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p.페이지모름
삶이 제공하는 당근과 채찍에 철저히 회유되고 협박당한 사람의 얼굴로 어머니는 작은 방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어머니의 살비늘 냄새를 맡고 있으면, 그녀에게 삶이 폭력이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녀는 어떤 희망에 그토록 교묘하게 회유당했을까.

p.52
너는 천천히, 정확한 단어를 고르기 위해 사이사이 침묵하며 말했지.

난 말이지, 정희야.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싶다는 뜻일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달라는 말일수도 있어.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야. 





<채링크로스84번가>는.. 그냥 책 추천 도서 같은 느낌이었다.
20분에서 30분 남짓해서 다 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빈약한 내용을 자랑한다.
왜 그렇게 이걸 추천을 많이 해준거야, 하면서 분노하면서 읽었다.
그냥, 가볍게 읽기에는 괜찮다.
스토리도 감동도 없다.
아주 조금의 당대현실 반영이 스토리와 감동 없음을 무마해줄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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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기왕 <초콜릿 코스모스>와 <흑과 다의 환상 상/하>를 읽었으니 온다 리쿠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기로 한다.

목요조곡 中

40대 중반이지만, 여자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자가 여자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그것을 당연하게 해내는 여자와 노력이 필요한 여자가 있다. 시즈코는 보기와는 다르게 영리하고 터프한 여자라서, 노력도 하고 있겠지만 그녀의 회로에는 그 에너지가 원래부터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에리코는 다르다. 아름다워지는 기쁨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워지고 싶다고 바라기도 하지만, 그것에 에너지를 쏟을 만한 회로가 자기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그것은 금새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만다.

- 목요조곡 p.12



결말이, 온다 리쿠 다워서 조금 지루했지만 괜찮게 읽었다. 너무 상황 자체가 억지스럽긴 하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中

요컨데 '난해함'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더해진 것이다. 난해함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권위와 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하기 힘든 페로몬을 발산하는 듯하다. -p.48

우화같은 분위기. 숨겨진 시선, 연극이 끝났을 때의, 예상했던 착지점과의 현혹적인 어긋남 -p.49

문득 목덜미 뒤에서 뭔가가 꿈틀대는 감촉이 느껴졌다. 익숙하고 친근한 정겨운 감촉이다. 이런 순간은 항상 갑자기 찾아온다.
다나베세이코의 에세이였던가. 이런 느낌을 두고,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 같은 감각, 이라고 했다. 손을 내밀어 살짝 고양이를 쓰다듬으려 하지만 항상 잽싸게 달아난다. 지금 당장 그곳에 아이디어가 있는 것은 알지만 섣불리 솓을 뻗으면 사라져 버린다. 고양이가 그 곳에 있을 때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고양이 따위 신경쓰고 있지 않은 듯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슬그머니 다가가는 것이다.
그는 고양이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가까이 있다. 아주 가까이. 아름다운 고양이가.
p.59-60

남자는 마음 한구석에서는, 과거의 여자는 모두 자기 것이고 모든 여자가 틀림없이 자기에게 미련을 갖고 있다는 환상이 있기 때문에 옛 여자가 '만나고 싶다'고 하면 주저없이 만나러 가기도 하지요. (중략)
여자는 미래를 살아가는 동물이니까. 그녀들에게 옛 남자는 어차피 '없었던 일'로 하고 싶은 과거거든. 실제로 그런 여자들을 보면 정말 잊어버리더군. 재조정 정도가 아니고 아예 기억에서 말소당하는 거야. 우리 남자들은.
p.80-81

남자들은 오해를 하곤 하지. 이 정도의 여자라면 나도 감당하겠구나 생각하는 것 같아.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을 걸기 때문에 그녀 스스로도 오해를 하게 만드는 거지. 그런 여자의 자만심은 대단해. -p.122

(전략) 이렇게 되면 역까지의 길을 되돌아가서 꼼꼼히 찾는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고 우산을 펼쳤더니 찰랑 하며 열쇠가 떨어졌다. 이 장면 어딘가에 사용할 수 없을까. -p.129

제복이라는 건 참 편리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것을 입는 순간 머리는 일에 대한 생각으로 바뀌고 같은 일을 하는 다른 동료와의 연대감도 생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리한 것은 그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p.243

밖에서 책을 읽다 보면 늘 이상한 심정이 된다.
밖에서는 항상 시간이 흐르고 풍경이 변화한다.(중략) 마치 강물에 나무토막을 꽂은 듯이 혼자만 물결을 거슬러 멈춰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는 것이다. (중략) 그런 느낌의 정체가 자신의 정신 활동이라고 생각하면 육체란 얼마나 무방비 상태로 외계에 노출되어 있는가 싶어 놀랍다.
어느새 몸이 조금씩 젖어들고 있었다. -p.312

나는 이 줄리엣의 순진함이 부러워요. 그보다 오히려 얄밉다고 해야겠지만. 첫사랑에 들떠서 그 사랑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자신이 믿는 사람을 위해 죽어 가요. 그 어리석음이 얄미워요. 자신이 순수하다고 여기는 오만함이 미워요. 사랑이 끝났을 때의 환멸이나, 살다가 느끼는 권태도 알지 못하고. (후략)
p.365




연극 이야기만 나오면 신이 나는 온다 리쿠씨의 마음을 알 것 같아 나도 신나게 읽었다.
그런데 역시 좀. 그렇게 긴 내용 동안 사건은 그렇게 더디 진행되면 숨막힌다.
그래도 이것도 온다리쿠스러워서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남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은 아니지만.. 

<헤엄치는 물고기>나 <도미노> 같은 책들은 발췌하고 싶었던 글이 없었나보다. 기록이 없다.
역시 갑자기 페이지를 기억해둬야 겠다는 생각이 들 때, 아, 내가 이 책을 재밌게 읽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삼월의 붉은 구렁을>도 꽤 재밌게 읽었을 텐데 기록이 없다. 사라진걸까. 아니면 문장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밤의 피크닉>도 그렇게 몰입해서 읽지는 못했지만, 끝이 뿌듯해서 좋았다. 이것도 기록은 없지만.
<나비>는 원래 단편집을 좋아하지 않는 나와, 격하게 판타지스러워진 작가님의 충돌로 Fail. 엉엉.


이러니저러니 해도 읽다보면, 왠지 동경이 느껴지고, 왠지 공감이 느껴지는 작가다. 좋다.
이 다음엔 <코끼리의 귀울음>을 읽자.
의외로 추천을 많이 해 주는 것 치곤 아직 손이 안 가서 못 읽은 책. 


읽은 것 중에선,
삼월시리즈 중 <삼월은 붉은 구렁을> 과 <흑과 다의 환상 上,下>
<초콜릿코스모스>(좀 판타지긴 하지만)

일단 이렇게가 최애작+추천작.


짐이 많아서 오늘은 도서관에 못 들렀다.
내일 들렀다 와야지.


요즘 여러모로 우울한 일이 많았는데, 어쩐지 이 블로그를 시작하길 잘한 것 같다.
음음, 안정된다, 좋다. 
온다리쿠라는 작가의 책 중에서 최애작을 딱 3권만 꼽으라면 꼭 들어갈 책이다.
어쩐 일인지 삼월시리즈와 초콜릿 코스모스에 반해 읽기 시작한 온다리쿠 월드의 책들은 죄다 미묘하게 비슷하게 이상하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충실하게 재밌다.

재독하고 있다. 일독할 때보다 더 많은 게 보이진 않지만, 역시 좋다.



★上권★

p.155-156
남에게 의논할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혼자서 고민하고, 대체로 혼자서 해결했다. 남들의 하소연과 고민을 듣는 것에 익숙했으므로, 같은 일을 남에게 하기는 창피하다는 느낌이 막연하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그런 부분의 평형감각은 지금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발언에 대한 감상, 어떤 행위를 꼴불견이라고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디쯤이 적절한 선인지, 집단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할지. 그런 세세한 부분의 평형감각은 마치 한 형제처럼 비슷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세세한 부분에 불과하다. 아마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처음부터 커다란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것이다. 

p.159
할 이야기가 있어.
마키오는 음식에는 손을 대지않은 채, 테이블 위에 두 손을 깍지끼고 있었다. 꼭 비즈니스 같네.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객에게 불리한 조건을 설명하는 영업사원의 손 모양.

p.161
전에는 당신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당신도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보다 그 사람을 더 좋아한다.
죄는 아니다. 어느 말도 죄는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어째서 이렇게 아플까. 어째서 이렇게 가슴을 찢어놓는 말이 죄가 아닐까.

p.162
정말로, 진심으로, 그 사람의 존재를 전부 자기 것으로 하고 싶은 애정의 대상은 기껏해야 한두 명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 사람은 몸도 마음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그 뒤에는 한동안 풀 한 포기 나지 않는다.
(중략)
맨 처음에 반려를 만나버린 사람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횟수를 거듭한다고 해서 더 좋은 것을 만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진짜 사랑을 만나버리면, 그 이상을 만나지 못하는 한 늘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진짜 사랑은 나중에 찾아오는 편이 낫다.

p.222
아아, 이 얼마나 교묘한가. 환멸, 그것은 인간을 효과적으로 성장시키고 늙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결혼만큼 그 존재 안에 환멸이 내포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결혼은 인간을 단기간에 늙게 한다. 증명 끝. 

p.243
"큰맘 먹고 오길 잘했어."
마키오가 곁에서 중얼거렸다. 그 목소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무슨 소리야. 처음에 어디 가고 싶다고 한 게 너였잖냐."
"그건 그렇지만."
마키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말은 누구나 하잖아. 다들 술만 마시면 아아 어딘가 가고싶다. 그런다고. 그건 영업목표 같은 거야. 실적보다 훨씬 높게 책정되어 있으니까 달성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아무도 실현될 거라고 생각 안해."

p.264
지금 두 사람이 한 이야기가 두 사람이 파국을 맞이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많이 닮은 두 사람은 자신들의 닮은 부분에 공감을 느낀다. 어째서 이렇게 하는 생각이 비슷할까 감동한다. 그러나 이심전심은 이윽고 공허가 되고,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된다. 닮았기 때문에, 상대방의 결점도 거울 속의 상처럼 그대로 자기 결점이 된다. 그것은 자기혐오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로 이어진다. 똑같은 부분이 결여된 두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결여된 부분을 서로 보완해 줄 수 없다. 

p.288
유대교 관습법인 탈무드에 '귀를 입의 세 곱절 일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下권★

 

p.26
나는 그런 때의 리에코가 제일 좋았다.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리에코. 무슨 일에 집중하고 있는 리에코. 그런 그녀가 제일 아름답게 보였다.

p.88-90
그쪽에서 안 올 거면 이쪽에서 가주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거침없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안에 털썩 주저앉는다.
(중략)
닥쳐.
마침내 인내심이 바닥난 나는 그 녀석을 쫓아벌ㅆ다.
그 녀석은 일어나서 민첩한 몸놀림으로 사다리를 내려가기 시작한다.
천천히 생각해 봐. 시간은 아직 충분히 있으니까.
그런 말을 남기고 그 녀석은 내 안에서 사라져버렸다.

p.108
숲은 온갖 것을 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백서롱주도, 헨젤과 그레텔도 숲속에 버려졌다.
(중략)
멍하니 숲속 깊은 곳을 바라보는 나 자신을 깨닫는다. 마치 버려진 뭔가를 찾는 것처럼.

p.164
물론 친구란 훌륭한 존재다. 필요하지 않으니까 필요한 것이다. 좋은 친구의 존재는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든지 암전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친구라고 정의하는 이 너무나도 불확실한 관계에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필연성이 없다. 그곳에는 항상 자존심과 질투라는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 언제든지 끊어버릴 수 있는 약하디약한 출렁다리 같다.




본문 중에 브라운 신부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아, 브라운 신부, 라며 자만하면서 읽었지만, 막상 돌이켜보면 집 서가에 꽃혀 있을 뿐 아직 몇 장 넘겨보지도 않은 책인데, 뭘 근거로 난 자만하는 건지. 이런 아는 척 하는 뇨자 곤란하다' ㅡ'-3


1독 할때 발췌했던 글↓과 묘하게 겹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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