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님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딱 잘라, 내 취향은 아니었다.
처음엔 너무 무거워서 좀 읽기 힘들겠다고 생각했고, 소재가 문체보다 더 무겁기에 이건 좀 시간이 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넘어서서 글이 너무 근엄하다. 읽다읽다 지친다. 1/3정도 읽고 그냥 내려놓았다. 끝까지 다 읽을 재간이 없다.
문장 자체는 좋고, 아름답고, 예쁘다. 문장이 예쁜 것만 가지고 계속 읽을 수 없다는 게 단점이지만.
소재도 조금 뜬구름잡는 이야기였다. 끝에 가서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p.페이지모름
삶이 제공하는 당근과 채찍에 철저히 회유되고 협박당한 사람의 얼굴로 어머니는 작은 방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어머니의 살비늘 냄새를 맡고 있으면, 그녀에게 삶이 폭력이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녀는 어떤 희망에 그토록 교묘하게 회유당했을까.

p.52
너는 천천히, 정확한 단어를 고르기 위해 사이사이 침묵하며 말했지.

난 말이지, 정희야.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싶다는 뜻일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달라는 말일수도 있어.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야. 





<채링크로스84번가>는.. 그냥 책 추천 도서 같은 느낌이었다.
20분에서 30분 남짓해서 다 읽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빈약한 내용을 자랑한다.
왜 그렇게 이걸 추천을 많이 해준거야, 하면서 분노하면서 읽었다.
그냥, 가볍게 읽기에는 괜찮다.
스토리도 감동도 없다.
아주 조금의 당대현실 반영이 스토리와 감동 없음을 무마해줄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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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감도>를 보면서 생각나는데로 휘갈긴 단상들이다. 후에 써먹을 데가 있으면 좋겠다.
영화자체는 5개중 하나정도의 단편만 괜찮았으니 별로였지만, 막혀있던 생각을 진행시킬 용도로는 좋았다.
영화 내용과 관계있는 내용보다, 없는 내용이 더 많다.
그냥 그 때, 커피를 과다복용해서 좀 하이상태였던 탓에 쓸데없이 낙서가 많았다. 생각난 김에 이제서야 워드로 옮긴다.

 1.여자가 남자의 떨어트린 물건을 주워준다. 장소는 공중전화나 우체통 앞 정도. 비웃음같은 미소로, 칠칠치 못하다는듯이. 저기요. 이거 떨어트리셨는데요. 막상 여자가 떠난 후에 그 여자가 흘린 물건이 그 자리에. 보통은 잘 흘리지 않을법한 물건이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걸로 하자.

2.아, 나는 대화의 기본이 안되어 있는 놈이다. 의문형으로 끝내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나는 자신만만할만한 당당한 근거가 있었다. 주관적으로 그건 아주 합당하고 그럴듯한 근거였다. 하지만 이런 도전적인 상황에 처한 건 이게 처음으로, 나는 내가 생각했던 그 근거가 아주 안일한 상황에서 쉽게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된다.

3.아니다. 나는 경제전공이라거나/교양이라거나/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기회비용을 생각하자. 어리석게 충동적으로 이러면!

4.일상의 모든 마주치는 매력있는, 사람이, 매력있는 사람이, 타인의 행복한 정황에 '그 사람'을 대입한다.

5.내마음이 내마음을 내마음대로 못하게한다. - 하지말자. 그만두자. 그게 이롭다.
이 놈의 몸뚱이는 머리와 연결되어 있긴 한거냐? (하지말자고 결심하는 순간 행동하고 있는 내 손/입/말/아무거라도)

6.중요한 건 내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이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 하는 것이다.
나의 일상의 지루하고 외로운 부분은 집어놓고 두드러지고 부각되는 부분을 마치 일상의 전부인냥.
그만큼 이 사람에게 잘보이고 싶었다.

7. 아무 근거없이, 처음 만난 사람을 상대로 보이는 것들을, 배경지식을 근거로 한 가지씩 캐치해서 상대방의 배경/현실/지금/취향/취미를 맞추는 놀이. 번갈아. 틀리면? 벌칙은 가혹할 수록 좋다. 

8.그 사람의 방을 관찰할 기회가 생긴다. /스토커같은 이미지로 만들지는 말고, 호기심백배 소년소녀같은이미지로/
뒤지는데 재미가 붙는다.  그만둬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9.그녀와 잘 수 있는 게 좋은 게 아니라, 그녀와 잘 수 있는 사이인게 좋은거라면,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다고 할 법 하다.
(요건 오감도 발췌. 토씨는 모르겠다.)

10.여자를 찾아 방 안을 돌아다니는 남자. 카메라와 시선이 겹치지 않게, 남자 뒤를 쫓는다.

11.가끔 내가 먼저 그에게 머리를 말려달라고 요구하거나, 귀찮을 법한 행동을 해 달라고 굳이 떼를 쓰는 건, 내가 그 일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 일이 그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래서다.

12.자꾸 벽장에 숨는 여자. 멀쩡한 집을 버려두고. 벽장에 있는 이불을 죄다 꺼내놓고. 제가 이불인척. 거기 그렇게.
(이유가 안나오면 그냥 호러스럽고 허세돋는 서술이 될 뿐이니까, 이걸 써먹고 싶다면 여자의 심리에 이유를 만들어줘야함)

13.집에 들어올 때마다 습관적으로 숨바꼭질하는 부부. 어느날 정말 찾을 수 없게 된다. 매일 그렇게 숨더니 이제 너무 잘 숨어서, 내가 찾을 수가 없네. 텅 빈 집에서 크게 고함을 지르고 울기 시작한다. 허함.

14.지루하게 인간을 괴롭히는 게 있다. 나는 어느 시점에서부터, 태어날때부터 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불량품이었다. 병원의 말로는 그냥 B형감염의 항체가 조금 부족할 뿐이라고 했지만, 원래 그렇게 무언가가 부족하거나 결여된 걸 불량품이라고 하는 거잖아.

15.자기 스킨은 가져갈래. 보고싶을 때 냄새맡게. 내가 계속 옆에 있을 건데, 뭐. 
그녀는 그때부터 이미 길고 긴 싸움을 예감하고 있었던거다. 난 그녀가 죽고나서야 그 일을 떠올렸다.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내가 배신할 거라는 걸, 3년 전에,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고, 그러면서도 나를 원망하지 않은 거다.
잘 꾸며진 내 새 가정이 갑자기 역겹게 느껴졌다.

16.겨우 혼자를 견딜 수 있게 되었을 때 돌아오지마. 

17.이번에 다같이 성묘를 가기로 했어요. 저, 혹시 위치가?
그냥 화장했어요.
나는 내 목소리가 화를 내는 것처럼은 느껴지지 않기를 빌었다.

18.그녀의 향수 뚜껑을 열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왜 냄새는 다른 것들에 비해 이렇게나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일까.
냄새는 지독히도. 그 어떤 냄새도. 단 한 번 맡은 냄새조차, 쉽게 기억하고 있다가 후에 같은 냄새를 맡게 되면 잽싸게 뇌에서 구분해준다. 이건 어느때 맡았던 그 냄새야, 라고.
정말인 모양이었다. 지워지지 않았다.

19.병원에서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늘 그렇게 물었다. 언제 내가 제일?

20.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늘 그렇게 함께 모든 걸 시작하고 끝나는 건 이상하잖아. 그렇다면 그건 언제 끝나는 걸까? 적당한 선에서? 연기로? 상대에게 맞추는 척 하며?

21.그는 나 때문에 죽었다. 후에 장례를 치룬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자리에서 꼬장꼬장한 그의 할머니가 마당까지 달려나왔다. 꺼져버려, 하면서 내게 뼛가루를 집어던지는데, 이게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고마웠다.
(이건 좀 그로테스크하지 않게 처리해야할듯)

22.집에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아무 끈이나 닥치는데로 붙잡고 내 목을 졸랐다. 울다 지쳐 목이 졸리는데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있는 힘껏 양 손을 잡아당겼다. 꺼억꺼억 짓눌리는 느낌이 기분나빴다. 아, 아, 죽을 수 있어. 
정신이 들어보니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양 손에 시뻘건 자국이 남아있었고, 목도 가는 끈에 졸린 자욱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기절했다 깨어난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싫어, 싫어, 다 싫어, 내 몸에 수분이 얼마나 있는지, 분명 더 이상 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고개를 들면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한 시간을 넘게 그 자리에 앉아 울었다. 억울했고, 그리웠다. 이젠 다시 볼 수 없을 거라는 실감은 없는데도 이렇게나 벌써 그리웠다. 눈을 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가라앉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건, 내 마음 속 뿐,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23.의미없이 아름다운 문장은 쓸모없이 잘 짜여진 짧은 영상미와 같다. 아름답고 신선하지만 거기에 감동은 없다.
내가 요즘 쓰는 게 그런 것 같다. 의미를 찾자. 받쳐줄 건, 탄탄한 전제와 강하고 살아있는 캐릭터다.

24.죽음을 슬퍼하기에 앞서 이 분노에 먹이를 줘야만 했다.
그의 마지막 여자를 몰아세우고 물어뜯었다. 달리 도망가려 들지 않는게 더 무섭고 얄미웠다.

25.그만두자고 생각했을 땐, 그 아이가 나의 벌을 다 받고 나면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 알게된 순간이었다.

26.내가 대신이 되고 싶었는데. 안되는 거구나. 정말 그 사람 사랑했구나? 내가 재밌는 걸 보여줄게.
등가교환이, 아주 쉬운 숫자놀음이 어떤 건지를 보여줄게.
그렇게 말하고 아이는 조용히 물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머리가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어쩐 일인지 그 사내가 물 밖으로 그 자리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죽었을텐데. 분명.

27.밝고 경쾌한, 피아노가 통통튀는 음악/뭔가의 기분좋은 시작의 예감. 기차로 출발하고.
왔어?하고 돌아보는 얼굴이 거기에 있다. 

28.이 사람에게만 말할 수 있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만이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그 사람을 데리고나와 나의 상황에 개입시켰다.
"난 네가 이해가 안된다. 도무지."
작고 사소한 한마디지만, 이걸로 난 전세계의 그 누구에게도 이해 받을 수 있으리란 희망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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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같이 쓰는, 3일에 한 번 마감을 하는 모임이 있었는데, 와해되었다.
그런 예감이 없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냥 무시했다.
나에겐 이 일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이야기는 억지로 잡아끌어 끌어들인 사람이 아니라, 함께 시작하기로 이야기했던 사람 쪽에서 나왔다.
이건 예상하지 못해서, 왠지 묘한 기분이다.

덕분에 스토리는 어긋났지만, 급하게 쓴 글들이 가지는 묘미가 있어서 좋다.
한 번 쓰고 난 글들은 쉽게 버릴 수 없어져서 이상해도 가지고 있고 싶은 마음과, 이건 아니니까 버려야지 하고 잘라내야 하는 마음이 겹치는 것도, '쓴 글'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고민이라서 기분 좋다.
나는 애초에 게으른 사람이라서 왠만해서는 쓰지 못하니까.

핑계고 변명이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라서 누가 잡아주지 않으면 공부를 못해, 라는 말을 그렇게 싫어하면서.
나는 게으른 사람이라서 누가 잡아주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해, 라니.

내 발로 서고 싶다고 늘 생각하는데, 그렇게 쉽지가 않네.

이제 어리광은 그만두고 애정으로 어떻게든 하자.
하고싶고, 쓰고 싶고.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지금 당장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으로.

중3때, 학교를 새벽 6시에 가서, 내가 제일 먼저 교실 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두 시간을 글을 썼다.
그 때는 그게 당연했다.

지금은 글을 쓰지 않는 자각과, 글을 써도 소용없다는 포기가 있어서,
꾸준히 타이핑할 수 있게 일기라도 써왔는데, 이제 와서 글을 이렇게 쓸 작정이었으면, 그냥 글을 쓰지 그랬니. 

격렬한 감정이 아니라도,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감정을 소설에 써먹고 싶다, 고 생각한다.
어쩐지 비열한 장사치 같다.
자식도 팔아넘기는 아버지 같다.
웃긴다.

아아, 이걸로 먹고 살수 있다면 정말 한이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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