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리쿠라는 작가의 책 중에서 최애작을 딱 3권만 꼽으라면 꼭 들어갈 책이다.
어쩐 일인지 삼월시리즈와 초콜릿 코스모스에 반해 읽기 시작한 온다리쿠 월드의 책들은 죄다 미묘하게 비슷하게 이상하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충실하게 재밌다.

재독하고 있다. 일독할 때보다 더 많은 게 보이진 않지만, 역시 좋다.



★上권★

p.155-156
남에게 의논할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혼자서 고민하고, 대체로 혼자서 해결했다. 남들의 하소연과 고민을 듣는 것에 익숙했으므로, 같은 일을 남에게 하기는 창피하다는 느낌이 막연하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그런 부분의 평형감각은 지금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발언에 대한 감상, 어떤 행위를 꼴불견이라고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디쯤이 적절한 선인지, 집단에서 어떤 포지션을 취할지. 그런 세세한 부분의 평형감각은 마치 한 형제처럼 비슷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세세한 부분에 불과하다. 아마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처음부터 커다란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것이다. 

p.159
할 이야기가 있어.
마키오는 음식에는 손을 대지않은 채, 테이블 위에 두 손을 깍지끼고 있었다. 꼭 비즈니스 같네.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객에게 불리한 조건을 설명하는 영업사원의 손 모양.

p.161
전에는 당신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당신도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보다 그 사람을 더 좋아한다.
죄는 아니다. 어느 말도 죄는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어째서 이렇게 아플까. 어째서 이렇게 가슴을 찢어놓는 말이 죄가 아닐까.

p.162
정말로, 진심으로, 그 사람의 존재를 전부 자기 것으로 하고 싶은 애정의 대상은 기껏해야 한두 명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 사람은 몸도 마음도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그 뒤에는 한동안 풀 한 포기 나지 않는다.
(중략)
맨 처음에 반려를 만나버린 사람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횟수를 거듭한다고 해서 더 좋은 것을 만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진짜 사랑을 만나버리면, 그 이상을 만나지 못하는 한 늘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진짜 사랑은 나중에 찾아오는 편이 낫다.

p.222
아아, 이 얼마나 교묘한가. 환멸, 그것은 인간을 효과적으로 성장시키고 늙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결혼만큼 그 존재 안에 환멸이 내포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결혼은 인간을 단기간에 늙게 한다. 증명 끝. 

p.243
"큰맘 먹고 오길 잘했어."
마키오가 곁에서 중얼거렸다. 그 목소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무슨 소리야. 처음에 어디 가고 싶다고 한 게 너였잖냐."
"그건 그렇지만."
마키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말은 누구나 하잖아. 다들 술만 마시면 아아 어딘가 가고싶다. 그런다고. 그건 영업목표 같은 거야. 실적보다 훨씬 높게 책정되어 있으니까 달성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아무도 실현될 거라고 생각 안해."

p.264
지금 두 사람이 한 이야기가 두 사람이 파국을 맞이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많이 닮은 두 사람은 자신들의 닮은 부분에 공감을 느낀다. 어째서 이렇게 하는 생각이 비슷할까 감동한다. 그러나 이심전심은 이윽고 공허가 되고,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된다. 닮았기 때문에, 상대방의 결점도 거울 속의 상처럼 그대로 자기 결점이 된다. 그것은 자기혐오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로 이어진다. 똑같은 부분이 결여된 두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결여된 부분을 서로 보완해 줄 수 없다. 

p.288
유대교 관습법인 탈무드에 '귀를 입의 세 곱절 일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下권★

 

p.26
나는 그런 때의 리에코가 제일 좋았다.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리에코. 무슨 일에 집중하고 있는 리에코. 그런 그녀가 제일 아름답게 보였다.

p.88-90
그쪽에서 안 올 거면 이쪽에서 가주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거침없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안에 털썩 주저앉는다.
(중략)
닥쳐.
마침내 인내심이 바닥난 나는 그 녀석을 쫓아벌ㅆ다.
그 녀석은 일어나서 민첩한 몸놀림으로 사다리를 내려가기 시작한다.
천천히 생각해 봐. 시간은 아직 충분히 있으니까.
그런 말을 남기고 그 녀석은 내 안에서 사라져버렸다.

p.108
숲은 온갖 것을 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백서롱주도, 헨젤과 그레텔도 숲속에 버려졌다.
(중략)
멍하니 숲속 깊은 곳을 바라보는 나 자신을 깨닫는다. 마치 버려진 뭔가를 찾는 것처럼.

p.164
물론 친구란 훌륭한 존재다. 필요하지 않으니까 필요한 것이다. 좋은 친구의 존재는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든지 암전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친구라고 정의하는 이 너무나도 불확실한 관계에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필연성이 없다. 그곳에는 항상 자존심과 질투라는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 언제든지 끊어버릴 수 있는 약하디약한 출렁다리 같다.




본문 중에 브라운 신부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아, 브라운 신부, 라며 자만하면서 읽었지만, 막상 돌이켜보면 집 서가에 꽃혀 있을 뿐 아직 몇 장 넘겨보지도 않은 책인데, 뭘 근거로 난 자만하는 건지. 이런 아는 척 하는 뇨자 곤란하다' ㅡ'-3


1독 할때 발췌했던 글↓과 묘하게 겹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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