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감도>를 보면서 생각나는데로 휘갈긴 단상들이다. 후에 써먹을 데가 있으면 좋겠다.
영화자체는 5개중 하나정도의 단편만 괜찮았으니 별로였지만, 막혀있던 생각을 진행시킬 용도로는 좋았다.
영화 내용과 관계있는 내용보다, 없는 내용이 더 많다.
그냥 그 때, 커피를 과다복용해서 좀 하이상태였던 탓에 쓸데없이 낙서가 많았다. 생각난 김에 이제서야 워드로 옮긴다.

 1.여자가 남자의 떨어트린 물건을 주워준다. 장소는 공중전화나 우체통 앞 정도. 비웃음같은 미소로, 칠칠치 못하다는듯이. 저기요. 이거 떨어트리셨는데요. 막상 여자가 떠난 후에 그 여자가 흘린 물건이 그 자리에. 보통은 잘 흘리지 않을법한 물건이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걸로 하자.

2.아, 나는 대화의 기본이 안되어 있는 놈이다. 의문형으로 끝내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나는 자신만만할만한 당당한 근거가 있었다. 주관적으로 그건 아주 합당하고 그럴듯한 근거였다. 하지만 이런 도전적인 상황에 처한 건 이게 처음으로, 나는 내가 생각했던 그 근거가 아주 안일한 상황에서 쉽게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된다.

3.아니다. 나는 경제전공이라거나/교양이라거나/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기회비용을 생각하자. 어리석게 충동적으로 이러면!

4.일상의 모든 마주치는 매력있는, 사람이, 매력있는 사람이, 타인의 행복한 정황에 '그 사람'을 대입한다.

5.내마음이 내마음을 내마음대로 못하게한다. - 하지말자. 그만두자. 그게 이롭다.
이 놈의 몸뚱이는 머리와 연결되어 있긴 한거냐? (하지말자고 결심하는 순간 행동하고 있는 내 손/입/말/아무거라도)

6.중요한 건 내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이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 하는 것이다.
나의 일상의 지루하고 외로운 부분은 집어놓고 두드러지고 부각되는 부분을 마치 일상의 전부인냥.
그만큼 이 사람에게 잘보이고 싶었다.

7. 아무 근거없이, 처음 만난 사람을 상대로 보이는 것들을, 배경지식을 근거로 한 가지씩 캐치해서 상대방의 배경/현실/지금/취향/취미를 맞추는 놀이. 번갈아. 틀리면? 벌칙은 가혹할 수록 좋다. 

8.그 사람의 방을 관찰할 기회가 생긴다. /스토커같은 이미지로 만들지는 말고, 호기심백배 소년소녀같은이미지로/
뒤지는데 재미가 붙는다.  그만둬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9.그녀와 잘 수 있는 게 좋은 게 아니라, 그녀와 잘 수 있는 사이인게 좋은거라면,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다고 할 법 하다.
(요건 오감도 발췌. 토씨는 모르겠다.)

10.여자를 찾아 방 안을 돌아다니는 남자. 카메라와 시선이 겹치지 않게, 남자 뒤를 쫓는다.

11.가끔 내가 먼저 그에게 머리를 말려달라고 요구하거나, 귀찮을 법한 행동을 해 달라고 굳이 떼를 쓰는 건, 내가 그 일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 일이 그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래서다.

12.자꾸 벽장에 숨는 여자. 멀쩡한 집을 버려두고. 벽장에 있는 이불을 죄다 꺼내놓고. 제가 이불인척. 거기 그렇게.
(이유가 안나오면 그냥 호러스럽고 허세돋는 서술이 될 뿐이니까, 이걸 써먹고 싶다면 여자의 심리에 이유를 만들어줘야함)

13.집에 들어올 때마다 습관적으로 숨바꼭질하는 부부. 어느날 정말 찾을 수 없게 된다. 매일 그렇게 숨더니 이제 너무 잘 숨어서, 내가 찾을 수가 없네. 텅 빈 집에서 크게 고함을 지르고 울기 시작한다. 허함.

14.지루하게 인간을 괴롭히는 게 있다. 나는 어느 시점에서부터, 태어날때부터 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불량품이었다. 병원의 말로는 그냥 B형감염의 항체가 조금 부족할 뿐이라고 했지만, 원래 그렇게 무언가가 부족하거나 결여된 걸 불량품이라고 하는 거잖아.

15.자기 스킨은 가져갈래. 보고싶을 때 냄새맡게. 내가 계속 옆에 있을 건데, 뭐. 
그녀는 그때부터 이미 길고 긴 싸움을 예감하고 있었던거다. 난 그녀가 죽고나서야 그 일을 떠올렸다.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내가 배신할 거라는 걸, 3년 전에,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고, 그러면서도 나를 원망하지 않은 거다.
잘 꾸며진 내 새 가정이 갑자기 역겹게 느껴졌다.

16.겨우 혼자를 견딜 수 있게 되었을 때 돌아오지마. 

17.이번에 다같이 성묘를 가기로 했어요. 저, 혹시 위치가?
그냥 화장했어요.
나는 내 목소리가 화를 내는 것처럼은 느껴지지 않기를 빌었다.

18.그녀의 향수 뚜껑을 열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왜 냄새는 다른 것들에 비해 이렇게나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일까.
냄새는 지독히도. 그 어떤 냄새도. 단 한 번 맡은 냄새조차, 쉽게 기억하고 있다가 후에 같은 냄새를 맡게 되면 잽싸게 뇌에서 구분해준다. 이건 어느때 맡았던 그 냄새야, 라고.
정말인 모양이었다. 지워지지 않았다.

19.병원에서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늘 그렇게 물었다. 언제 내가 제일?

20.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늘 그렇게 함께 모든 걸 시작하고 끝나는 건 이상하잖아. 그렇다면 그건 언제 끝나는 걸까? 적당한 선에서? 연기로? 상대에게 맞추는 척 하며?

21.그는 나 때문에 죽었다. 후에 장례를 치룬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자리에서 꼬장꼬장한 그의 할머니가 마당까지 달려나왔다. 꺼져버려, 하면서 내게 뼛가루를 집어던지는데, 이게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고마웠다.
(이건 좀 그로테스크하지 않게 처리해야할듯)

22.집에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아무 끈이나 닥치는데로 붙잡고 내 목을 졸랐다. 울다 지쳐 목이 졸리는데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있는 힘껏 양 손을 잡아당겼다. 꺼억꺼억 짓눌리는 느낌이 기분나빴다. 아, 아, 죽을 수 있어. 
정신이 들어보니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양 손에 시뻘건 자국이 남아있었고, 목도 가는 끈에 졸린 자욱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기절했다 깨어난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싫어, 싫어, 다 싫어, 내 몸에 수분이 얼마나 있는지, 분명 더 이상 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고개를 들면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한 시간을 넘게 그 자리에 앉아 울었다. 억울했고, 그리웠다. 이젠 다시 볼 수 없을 거라는 실감은 없는데도 이렇게나 벌써 그리웠다. 눈을 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가라앉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건, 내 마음 속 뿐,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23.의미없이 아름다운 문장은 쓸모없이 잘 짜여진 짧은 영상미와 같다. 아름답고 신선하지만 거기에 감동은 없다.
내가 요즘 쓰는 게 그런 것 같다. 의미를 찾자. 받쳐줄 건, 탄탄한 전제와 강하고 살아있는 캐릭터다.

24.죽음을 슬퍼하기에 앞서 이 분노에 먹이를 줘야만 했다.
그의 마지막 여자를 몰아세우고 물어뜯었다. 달리 도망가려 들지 않는게 더 무섭고 얄미웠다.

25.그만두자고 생각했을 땐, 그 아이가 나의 벌을 다 받고 나면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 알게된 순간이었다.

26.내가 대신이 되고 싶었는데. 안되는 거구나. 정말 그 사람 사랑했구나? 내가 재밌는 걸 보여줄게.
등가교환이, 아주 쉬운 숫자놀음이 어떤 건지를 보여줄게.
그렇게 말하고 아이는 조용히 물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머리가 보이지 않게 되는 순간, 어쩐 일인지 그 사내가 물 밖으로 그 자리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죽었을텐데. 분명.

27.밝고 경쾌한, 피아노가 통통튀는 음악/뭔가의 기분좋은 시작의 예감. 기차로 출발하고.
왔어?하고 돌아보는 얼굴이 거기에 있다. 

28.이 사람에게만 말할 수 있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만이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그 사람을 데리고나와 나의 상황에 개입시켰다.
"난 네가 이해가 안된다. 도무지."
작고 사소한 한마디지만, 이걸로 난 전세계의 그 누구에게도 이해 받을 수 있으리란 희망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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